
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이번주에 읽은 책을 소개해드릴게요.
book 아무튼 시리즈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는 나에게 기쁨이 되는 한 가지 소재를 정해 쓰는 에세이입니다. 여러 명사와 작가가 참여하였으며, 지금까지 총 28개의 책이 나왔습니다. 얇고 작은 판본에 술, 양말, 비건, 예능 등등 각자의 개성을 담은 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데요. '아무튼' 시리즈만큼이나 독특한 세 사람이 모여, 자신이 고른 '아무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출처 : 아무튼 페이스북 아무튼 시리즈를 아시나요? 윤성용 : 오늘은 '아무튼' 시리즈에 대해 다루기로 했죠. 혹시 이 시리즈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김승원 : 저는 요조 님이 쓰신 <아무튼, 떡볶이>로 처음 알게 됐어요. 그 외에도 재미있는 책들이 많아 보여서 언젠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김버금 : 저는 서점에서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사는 책들을 보면서 요새 트렌드를 알게 되는데요. '아무튼' 시리즈를 많이 구입하셔서 알게 됐어요. 제목에서부터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지가 명확해서 그런지 특히 많이 찾으시는 것 같아요.
김승원 : 서로 다른 세 개의 출판사가 협업했다는 것도 신기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을까요. 윤성용 : 참 재밌는 시리즈죠. 취향이라는 게 점점 세분화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예전에는 소수의 전문가나 매니아가 있었다면,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좁고 깊은 취향을 갖기 시작했어요. 김버금 : 공감되네요. 예전에는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독서나 음악 감상처럼 큰 범주였잖아요. 지금은 같은 음악이어도 클래식을 좋아하거나, 락음악을 좋아하는 것처럼 세분화되는 것 같아요. 요새 말하는 ‘자기 취향 찾기’와도 어울리고요. 왜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찾는지 알 것 같아요. 윤성용 : 그런 분명한 취향이 있을 때 더 재밌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김버금 : 그럼요. ‘덕질도 좁고 뾰족하게 하자!’
우리가 선택한 '아무튼' 김버금 : 각자 책 고르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다들 어떤 책을 선택하셨나요? 김승원 : 저는 <아무튼, 예능>을 발견하고서 제가 좋아하는 예능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골랐어요. 쉽게 읽힐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어요. 오히려 예능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담은 책이었어요. 생각을 많이 해야해서 읽는 데 시간도 좀 걸렸어요. 김버금 : 생각보다 어려운 책이었군요. 윤성용 : 저는 정혜윤 PD님이 쓰신 <아무튼, 메모>를 읽었어요. ‘일간 이슬아’에서 PD님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고르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도 메모를 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김버금 : 기대했던 내용과 비슷했나요? 윤성용 : 아니요, 조금 달랐어요. 이를테면, '메모하는 법'에 대한 내용이 나올 거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메모는 하나의 매개인 것 같고 결국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자유롭게 쓴 느낌이었어요. 김승원 : ‘메모’라는 주제로 어떤 책을 쓰셨을지 궁금하네요. 김버금 : 저는 주제가 많아서 고민하다가 <아무튼, 술>을 골랐어요. 제가 술을 전혀 안 마시거든요.(웃음) 윤성용 : 그런데 이 책을 고르셨다고요? 김버금 : 그래서 이 책을 골랐어요. 저는 술을 못 마셔서 일 년에 한 방울도 안 마시거든요. 한편으론 너무 궁금한 거예요. 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처음 마신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등등.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어쩌면 앞으로도 경험해볼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짐작하고 간접 체험해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윤성용 : 흥미롭네요. 그러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해볼까요.
승원의 선택 : <아무튼, 예능> 복길 김승원 : <아무튼, 예능>을 쓴 작가님은 ‘복길’이라는 이름으로 트위터에서 활동하시는 분이에요. 방송국에서 일한 경력도 있으세요. 사춘기 때 우울한 시기를 보냈는데, TV를 보면서 그 시간을 죽이셨던 것 같아요. TV를 ‘바보상자’라고 하잖아요. 복길 님은 "텔레비전은 나태함이자 두려움, 어딘가 죄스러운 물건이면서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라고 말해요. 김버금 :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공감되는데요. 김승원 :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셔서 그런지, 예능을 볼 때도 비판적으로 바라보시는 듯해요. 예를 들면, 남자들이 갖고 있는 라인, 출연자와 연출자 사이의 친목으로 이루어지는 예능들이 있잖아요. '나영석 PD님과 강호동', '김태호 PD와 유재석', 이런 식으로 친목을 기반으로 하는 예능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담으셨어요. 사실 저는 그걸 의식하지 않고 예능을 봐왔거든요. 이런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구나, 라고 처음으로 생각해봤어요. 김버금 : 여기서 비판하는 건 남성 출연자와 연출자가 서로 연대하는 구조인 건가요? 김승원 : 그렇죠. 서로를 끌어주는 구조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분은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을 보셨을 거잖아요. 출연진이 어떻게 결정되고 제작되는지 아시기 때문에 더 문제의식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윤성용 : 그러면 복길 님은 전반적으로 예능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계신가요? 김승원 : 맞아요. 하지만 예능 덕후니까, 비판하더라도 끝까지 보겠다고 하시더라구요. 마지막에는 관에 들어가서까지 TV를 보고 싶다고 쓰셨어요. “싫으나 좋으나 내 시간은 TV와 함께 흐르고 있다. 관 안쪽에 텔레비전을 달 수 있는지, 만약 달 수 있다면 사후 얼마나 유지되는지 알아봐야겠다.”라면서 책이 끝나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이 정도의 덕후라면 비판할 자격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김버금 : 굉장히 여러 갈래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네요. 김승원 : 생각보다 어렵고 무거운 책이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페미니즘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아니에요. 최근에 나온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시거나, 여성 예능인이 TV에 잘 보이지 않아서 불만이신 분들이 보신다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성용의 선택 : <아무튼, 메모> 정혜윤 윤성용 : 저는 <아무튼, 메모>를 읽었어요. 혹시 두 분은 평소에 메모를 하시나요? 김승원 : 저는 어플리케이션으로도 쓰고요, 보통은 연필로 종이에 메모하는 걸 더 좋아해요. 그때그때 생각이나 느낌, 해야 할 일을 자주 메모하는 편이에요. 김버금 : 저도 필기하다가 귀퉁이에 메모를 하기도 하는데요. 메모를 하다 보면 내가 어디에 무엇을 써놨는지 잊어버리더라구요. 결국 정착한 건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였어요. 간단한 메모뿐만 아니라, 기사나 정보를 스크랩할 때도 쓰고 있어요. 윤성용 : 두 분 모두 나름대로 메모를 하고 계시네요. 저는 2016년에 처음 입사하고부터 의식적으로 메모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매일 일지를 썼고요. 정혜윤 PD님도 메모를 시작한 이유가 저와 비슷해요. 나를 위해서 더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메모를 시작하셨다고 해요. 메모를 하면서 자신이 무엇 때문에 슬펐는지, 무엇을 어떻게 버텼는지, 또 언제 행복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말도 와 닿았어요. 김버금 : 들어보니 메모에도 여러 가지 기능이 있네요.윤성용 : 두 번째로 자신의 메모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그중에 하나만 소개드릴게요. 서울대공원에 동물원이 있는데 ‘꼽추’라는 콘도르(맹금류)가 있어요. 그 새를 좋아해서 자주 보러 갔다고 해요. 어느 날 ‘꼽추’가 죽은 거예요. 이분은 직접 사육사를 만나서 꼽추가 어떤 성격이었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왜 죽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콘도르에 대해 조사하고 메모를 했다고 해요. 이분에게는 메모하는 행위가 꼽추를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식이었던 거예요. 김버금 :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했던 메모의 기능을 여러 방식으로 확장하셨네요. 김승원 :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메모를 하셨고요. 윤성용 : 메모를 통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을 남기려는 것 같아요. 인간을 위로하고 기쁨을 주고 싶다는 면에서, 세상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하고 싶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메모의 재발견이라고 할까요. 평소에도 메모를 하고 있거나 메모를 해야겠다고 느끼는 분들, 일상의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분들이 <아무튼, 메모>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버금의 선택 : <아무튼, 술> 김혼비 김버금 : 저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술을 마시지 않아서 <아무튼, 술>을 읽었는데요. 일단 김혼비 작가님이 필력이 좋고 재밌으세요. 앉은자리에서 한 번도 책을 덮지 않고 쭉 읽었어요. 자신이 어떤 술들을 좋아하는지 말하는데,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건 소주병을 따고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소리래요.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은 청아한 소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이 맑아진다고 하시는데, 술을 안 마시는 저도 이런 피부와 와 닿는 표현들이 재밌었어요. 김승원 : '똘똘똘똘'과 '꼴꼴꼴꼴'사이라니. 표현이 너무 재밌네요.(웃음) 김버금 : 술로 인한 흑역사 이야기도 있어요. 한번은 술에 취해서 노래방에 갔다가 노래방 리모컨을 들고 나왔다고 해요. 택시를 타고 가면서 그걸로 운전하는 시늉을 했다는 거예요. 택시에 지갑도 두고 내리고요. 다음 날, 택시 기사님을 만나 사과드렸다고 하는데요. 기사님이 대수롭지 않게 “아, 됐어요. 아가씨 힘내세요.”라고 얘기하셨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툭 나오더래요. 그 흑역사를 떠올리면 지금도 부끄러워지지만, 그래도 그 덕에 스쳐지듯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진중하게 말을 골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재미로만 남을 수 있었던 인생의 흑역사를 이런 식으로 풀어낸 것에 놀랐고, 술을 마시면 다른 차원의 경험을 해볼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도 했어요. 윤성용 : 지금 저의 흑역사를 잠깐 떠올려 봤어요. 김승원 : 저도 제 흑역사가 떠올랐어요. 저는 앞치마를 그냥 입고 집에 갔다가 돌려드리러 간 적이 있어요. 윤성용 : 저는 깨어났더니 왕십리 골목이었던 적도 있어요. 그 외에도… 많이 있었습니다.김승원 : 이분의 첫 술에 관한 기억도 있나요? 김버금 : 네, 있어요. 고등학생 때 백일주를 마셨대요. 아마 수능 백일 전에 마시는 건가 봐요. 이분도 내성적이었고, 얌전한 친구가 있었는데 술 먹고 싸웠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웃음) 이 책은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당연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저처럼 술을 안 마시는 사람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라임도 있어요. ‘김혼비의 술책. 술술 넘기다 보면 마음이 술렁인다.’ 술에 관해서 유쾌하게 술술 쓴 글이었어요. 술의 역사도 꽤 오래되었잖아요. 인간의 생각과 문명과 문화를 아우르는 근간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술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출처 : 아무튼 페이스북 우리가 쓰고 싶은 '아무튼' 윤성용 : 오늘 이야기하면서, 각자 책을 선택한 이유와 어떻게 읽었는지 들어보는 게 재밌었어요. 그리고 저희는 서로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버금 : 책을 매개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정말 재밌는 경험인 것 같아요. 윤성용 : 만약 ‘아무튼' 시리즈를 맡게 된다면 어떤 주제로 쓰고 싶으세요? 저는 ‘아무튼, 맥주’를 쓸 것 같아요. 수제 맥주를 좋아해서 맥주를 집에서 만들어보기도 하고, 공부도 해보고, 많이 마시러도 다녔어요. 한때는 IPA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형이기도 했어요. 언젠가 맥주 펍을 차리는 것이 꿈이기도 해요. 김승원 : 저는 과일에 대해서 써보고 싶어요. 저는 과일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저희 집엔 쌀은 없어도 과일은 꼭 있어야 돼요. 과일이 떨어지면 ‘과일이 없네, 과일이 없어.’하고 돌림노래가 시작돼요. 보통 스트레스 풀 때 음식으로 풀잖아요. 저는 과일을 먹어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몸도 찌뿌둥한 게 풀리는 것 같아요. 나중에는 직접 키워보고 싶기도 하고, 과일에 대한 책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버금 : 저는 ‘산책’에 대해서 써보고 싶어요.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걸어요. 요새는 걷는 수가 측정되잖아요. 매일 평균 만 보 씩 걷거든요. 이렇게 산 지가 7, 8년 정도 됐어요. 저는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도 재밌게 읽었어요. 저와 너무 비슷해서요. 저에게 산책은 아무 생각도 안 하게 해주는, 잠깐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에요. 그래서 산책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성용 : 말씀해주신 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다들 써주시면 안 될까요?(웃음)"오늘 xyzorba book은 어땠어요?" 보내주는 피드백은 늘 꼼꼼히 읽고 있어요.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요. 친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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