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이번주에 읽은 책을 소개해줄게요.
문보영 | 쌤앤파커스 | 2019년 | 244쪽 book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은 문보영 시인이 2019년 5월에 출간한 산문집입니다. 이 책은 작가가 블로그에 올렸다가 비공개로 돌린 일기들을 모은 것인데요. 20대라는 시간을 건너는 동안 시인이 겪은 아픔과 슬픔을 용기 있게, 재기발랄하게 써내려간 성장의 기록입니다. 20대를 보낸 세 사람이 책을 읽고 모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에세이와 일기 사이 윤성용 : 버금 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버금 : 저는 문보영 시인을 시집으로 알게 됐어요. 힙합춤을 추고, 브이로그를 찍고, 피자를 좋아하는 시인이라서 기억에 남았는데요. 제 또래의 시인이라는 점에서도 매력이 있었고, 그분이 쓴 에세이가 궁금해서 선택하게 됐어요. 김승원 : 저는 초등학교 동창 중에 문보영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괜히 그 친구가 생각나서, 그 친구의 일기장을 읽는다는 설정을 잡고 이 책을 봤어요.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같이 수다 떠는 기분으로 읽게 되더라구요. 윤성용 : 저도 어느 20대 여성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이었어요. 전 애인과의 사랑을 다룬다거나 우울증과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하잖아요. 개인적인 소재를 솔직하게 다루어서 그런지 더 일기처럼 느껴졌어요. 김승원 : 정제되지 않은 글이라고 할까요. 읽힐 것은 알고 있지만, 독자를 과하게 배려하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김버금 : 저도 에세이를 쓰다 보니까, 일기와 에세이가 다른 점은 무엇인지 스스로 묻게 돼요. 만약 그렇다면 나는 왜 남의 일기를 읽는 것인지도 생각해보고요. 에세이는 그 작가의 삶의 태도를 읽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있었던 자기 일상의 단면을 그대로 나타내는 거잖아요. 쓴 사람의 삶의 태도가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에세이를 읽고 나면 이 사람을 왠지 알게 된 느낌이 들고, 친구가 한 명 생긴 기분도 들고,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라는 괜한 위안도 얻게 되고,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네’라고 시야가 한 뼘 더 커지는 느낌도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에세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랑한게 운명인거지 김승원 :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이 참 어렵구나 싶었어요. 문보영 시인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내면을 보고 사랑해달라고 하는 건 폭력에 가깝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행복하게 오락가락 살았습니다’가 맞는 말이다."라고요. 그게 정말 공감이 됐어요.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나의 내면을 사랑해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요. 평생 사랑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인 것 같고요. 김버금 : 그 부분 너무 공감됐어요. 김승원 : 세상은 결혼이 마치 사랑의 결말인 것처럼, 결혼을 못하면 그게 마치 사랑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한다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사랑한 게 운명인 거지."라는 표현이 너무 좋더라고요. 이렇게 다른 사람이 만나서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운명인거지, 꼭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야만 운명인 것은 아니라는 거죠. 김버금 : 맞아요. 사람들은 헤어진 연인을 보면 "너네는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라고 말하잖아요. 사실 만난 기간이 6개월이든 3년이든 연이 닿았으니까 만난 건데 말이에요. 헤어졌다는 팩트 하나만으로 연이 아닌 사이라고 못 박아 버린다는 작가의 말도 공감됐어요. 윤성용 : 문보영 시인이 어느 인터뷰에서 '서른 전에 하고 싶은 것이 이혼'이라고 대답하는 글도 있었어요. 그리고 결혼은 잘 모르겠지만 이혼은 잘할 자신이 있다고요.(웃음) 문보영 시인은 기존의 사회적인 관습이랄까, 알게 모르게 우리가 받는 압박이나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인 것 같아요.
타인으로부터 규정된 나 김버금 : 문단에 대한 압박감이라든지, 등단한 시인에 대한 기대감이라든지. 자신이 시인인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든지, 그런 게 굉장히 부담으로 다가오는구나.라고 느꼈어요. 여러분도 그런 것이 있으실까요. 나에게 이런 프레임은 부담스럽다. 윤성용 : 버금 님이 많이 느끼실 것 같은데요. 최근에 책도 내셨고, 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도 하시고요. 김버금 :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필명을 썼어요. ‘김버금’이 필명이에요. 덕분에 글 쓰는 나와 친구들과 어울릴 때의 나를 편하게 분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차차 적응 해나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유튜브도 하고 책도 냈지만, 사실 세상 사람들은 저에게 관심 없거든요. 그게 오히려 위안이 돼요. 김승원 : 저는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프레임에 잘 못 맞추는 사람 같아요. 둘째 딸은 이럴 거야, 라든지 연구원은 이럴 거야, 라든지요. 저도 둘째 딸처럼 애교도 부려보고 싶고, 연구원처럼 치밀하고 꼼꼼하고 계획적으로 행동하고 싶어요. 나이가 들수록 저에게 부여되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 관계에 맞추어서 행동하는 걸 저는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선배답게 행동하는 것이 무엇일까... 잘 모르겠어요. 윤성용 : 하고 싶어도 못하시는 거 군요.(웃음) 저는 살면서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고 노력했던 편이었고, 그걸 꽤 잘했던 것 같아요. 장남으로서, 선배로서, 혹은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들. 사람들이 원하는 기대에 모두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허무해지더라구요. 지금은 안 그러려고 노력해요. 김버금 : 어떤 사람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 사람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잖아요. 성별이나 나이, 직업 같은 것들이요. 그런 정보를 알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프레임이 생겨나기 마련인데, 그걸로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 프레임은 느슨하게 가지고 있되, 실제로 만나고 겪으면서 탄력적으로 판단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우울감, 무기력증을 보내는 법 김승원 : 이 책에서 우울증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셨더라고요. 저는 제가 우울증을 한번 지나갔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우울감이었던 것같아요. 혹시 우울증을 경험해보셨나요? 김버금 : 저도 우울증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분의 실제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보다는 경미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런 기분에 공감할 수 있었어요. 문보영 시인이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려고 하시잖아요. 브이로그도 찍고, 뉴스레터도 보내면서요. 그 방식이 위로가 되었어요. 저는 정말 재밌어서 하시는 줄 알았는데, 삶을 살아내는 방법으로도 응용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윤성용 : 저도 뉴스레터를 쓰면서, 이 삶을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고통스럽고 우울할 때가 있었는데요. 제가 노력해서 극복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해결됐어요. 그래서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이런 문제에 다시 직면했을 때, 내가 다시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김승원 : 저는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을 몇 년 정도 겪었는데요. 그걸 여행으로 극복했던 것 같아요. 여행을 가려면 무언가를 알아봐야 하잖아요. 낯선 곳에 나를 내던져 놓으니까, 살기 위해서 뭐라도 하게 되더라고요. 숙소도 예약해야하고 밥 먹을 곳도 찾아야 하구요.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안하게 되는데, 여행을 하면 해야할 일들이 생기니까 무기력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버금 : 여행도 나름의 일상을 연습하는 방법이겠네요. 저도 우울감과 우울증 사이를 겪어본 적이 있었는데요. 겉으로 보면 멀쩡한데 속은 우울하고, 그래서 정신없이 어딘가에 매달리는데, 고장난 바퀴처럼 엉망진창인채로 굴러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랬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굴리던 것을 멈췄던 지점이 있었는데요. 그 바퀴를 재정비하는데 글쓰기의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글을 쓰다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모습들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묘한 위안이 됐어요. 그럼에도 괜찮구나, 그럼에도 여기까지 잘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물하고 싶은 문장들 윤성용 : 이 책에 흥미로운 문장들이 많아요. 혹시 구독자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문장이 있으신가요? 김승원 : 저는 제목 그대로예요. 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라고 대답했던 문장이요. 저도 사람이 미울 때 시를 썼거든요. 그런데 그게 다정한 방식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미워서, 내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썼던 건데, 이 말을 들으니까 내가 왠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내가 그냥 미워하지 않고 다정한 방식으로 미워했던거구나!(웃음) 윤성용 : 저는 이 문장을 선물하고 싶어요.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내 속도대로 내키는대로. 침대와 벽 사이 아늑한 공간에서 여생을 보내는 나의 널부러진 브라자처럼”. 이 책 전반을 지배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어요. 그냥 나는 나대로, 하고 싶은대로 널부러진 채 살고싶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라고 위안을 주고 싶어요. 김버금 : 저는 다 좋았는데요. "잘못된 세상을 한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라는 문장이 좋았어요. 세상이 다 잘될거라고 기대하는 게 아니라 반대잖아요. 잘못된 것을 믿겠다는 태도가 용기있고 대담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확실한 길, 안정된 길보다는 어떠한 경우의 수가 나올지 모르는 길을 가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삶에 대한 불안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윤성용 : 보통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불안하거든요. 어떤 요소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들은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우연하게 일어난 일들이었어요. 오히려 그런 불확실한 길을 열어두는 쪽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총평 윤성용 : 마지막으로 총평을 들어볼까요. 김승원 : 20대 청춘의, 시인의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응원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공감가는 내용도 많았고요. 재밌었어요. 김버금 : 책을 처음 펼쳤을 때는 ‘시인 문보영’으로 시작해서, 책을 덮을 때는 ‘인간 문보영’으로 끝났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시인이 쓴 산문집이라는 것에 끌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까 이 사람이 너무 재밌고 좋아졌어요. 또래인 친구와 재밌게 수다를 떤 느낌이 들어서 재밌었어요. 윤성용 :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이 사랑, 우울, 아름답지 않은 삶, 그리고 그걸 함께하는 친구들이잖아요. 책을 읽으면서 같이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특이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특별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으세요? 김승원 : 저는 짖궃은 생각인데, 이분의 전 남자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어요.(웃음) 이런 마음이었다는 걸 뒤늦게라도 알려주고 싶어서요. 윤성용 : 저는 타인으로부터 규정된 정체성 때문에 고민이 많거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산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될 때, 왠지 위로를 얻는 느낌이 들거든요. 김버금 : 저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나를 인정하기 싫고,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고, 나만 동떨어졌다는 생각에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요. 이 책은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도 있다는 것, 너의 삶이 특이한 것이 아니라 특별할 수 있다는 것, “나도 그냥 이렇게 살아”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이 다정한 방식으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xyzorba book은 어땠어요?" 보내주는 피드백은 모두 꼼꼼히 읽고 있어요.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요, 친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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