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이번주에 본 영화를 소개해드릴게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 엘라 콜트레인 주연 | 2014년 film 보이후드 <보이후드>는 2014년에 개봉한 성장영화입니다. <비포 선라이즈>시리즈를 연출한 링클레이터 감독이 다시 한 번 특별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배우들과 무려 12년 동안 촬영한 것인데요. 6살의 소년 '메이슨'이 18살 청년이 되기까지 겪는 성장과 인생의 격동을 그렸습니다. 아직도 성장 중인 두 사람이 만나 영화 <보이후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오늘 이야기 할 사람들 - - 윤성용 : 뉴스레터 xyzorba 발행인. 진지한 대화를 좋아합니다. 삶에 대한 깊고 다양한 고민을 자주 합니다. 제너럴리스트를 꿈꿉니다. - 김의환 : 출판잡지 에디터에서 대학원생으로 복귀. 뉴스레터 서비스 ‘오글리의 심야편지’ 휴업중. 잡다하게 보고 듣고 읽는 미디어 중독자입니다. 이제는 쓸 차례.
12년 동안 촬영한 영화 김의환 : <보이후드>는 성장영화를 함께 보는 이 코너에서 꼭 다루고 싶었어요. 이 영화 어떠셨나요? 윤성용 : 인생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좋았어요. 특히 12년 동안 찍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의미가 커지는 영화인 것 같아요. 김의환 : 정말 물리적으로 주인공이 ‘성장’하는 성장영화잖아요. <보이후드>의 특별한 제작 과정을 간략히 말하자면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12년 동안 매년 시나리오를 쓰고 텍사스 주에서 그해 분량을 35mm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해요. 다큐가 아닌 극영화이지만 촬영할 때는 이후의 전개도, 결말도 알 수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에요. 우리 인생처럼 이 영화도 불확실성을 안고 간 거죠. 윤성용 : 배우들이 영화의 시간과 함께 늙어가잖아요. 실제와 엮여 있어서 묘하게 느껴져요. 사실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보면 모든 순간을 다 기억하는 게 아니라 인상적인 장면만 기억하잖아요. 제가 지나온 12년을 기억하면 이런 영화와 비슷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아마 몇 가지는 특별하고, 몇 가지는 별 거 아닌 순간들로 채워지겠죠. 김의환 :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을 닮은 영화랄까요. 시간, 기록, 기억, 나이듦, 성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성과 형식을 갖추고 있어요. 유년과 청소년기의 나는 어땠는지 자주 떠올리고, 지나온 일들을 곱씹고, 기록하고, 나누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와 닿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죠. 윤성용 : 보편적인 성장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인생이라는 게 이렇게나 비슷한 걸까요. 같은 환경에서 같은 사건을 겪은 건 아니지만 다 공감할 수 있는, 내 이야기라는 느낌이었어요.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김의환 : 좋았던 장면, 인상깊은 장면을 나눠볼까요? 윤성용 : 저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성장에 눈길이 갔어요. 특히 메이슨의 어머니는 싱글맘, 워킹맘으로 혼자 개구장이 둘을 키우는 게 고단하고 힘들어 보이고 살 길이 막막하고... 그 와중에 대학교 다니면서 학위를 따고 대학에 자리잡죠. 반면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만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요. 김의환 : 그것도 리얼했어요. 어머니가 만난 사람들이 알콜 중독자에 폭력성 있는 사람이잖아요. 왜 우리는 같은 일에 반복해서 쓰러질까, 특정 부류에 끌릴까 하는. 두 번째 남편이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들이 꽤 비중있게 나오는데 좀 무서웠어요. 엄마와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을 것 같아요. 윤성용 : 그렇게 힘들게 키워서 결국 메이슨은 18살이 되죠. 마지막에 어머니는 메이슨을 대학으로 보내면서 거의 절규하듯 말을 토해내요. 나는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모두 다 끝났고 이제 다음은 내 장례식 밖에 없어. 그때 엄마의 시선에서 영화를 다시 바라보게 되죠. 김의환 : 맞아요. 너무 명대사고 마음을 울리죠.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I just thought there will be more.)” 영상클립윤성용 : 부모님이 느끼는 허무함, 공허함이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요. 이제 무엇을 동력으로 살아야 하지 하는. 김의환 : 그렇게 아이들을 길러서 내보내고 독립시키고, 자신의 경력도 쌓고, 가정을 일구며 헌신하는 것으로 12년을 살아왔는데, 다 이뤄진 순간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너무 잘 그려냈어요.
우리 마음에 쌓이는 것들 김의환 : 메이슨이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서 아빠가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다들 겪어본 일이야.”라고 말해주거든요. 어른들이나 선생님이나 부모님이나 우리가 사는동안 많은 조언을 해주었을 거잖아요.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요. 그게 엄청난 영향을 줘서 아직도 남아있기도 하고 영영 안잊혀지는 상처로 남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 잘 들어가 있어서, 내 인생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표정과 말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윤성용 : 혹시 기억에 남는 말이 있으세요? 김의환 : 단편적인 기억인데요. 열살 쯤에 아버지와 ‘스카이락’이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목이 안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가 직업상 말씀을 많이 하셔야 하거든요. 목 수술을 받으셔야 겠다고 하시는데 그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다시는 말을 못하게 되실까봐 엄청나게 슬퍼했던 기억이 나요. 성용 님도 그런 기억이 있으세요? 윤성용 : 저도 기억나는 게 있는데요. 어릴 적에는 아버지와 남동생이랑 한 달에 한 번씩 꼭 하는 코스가 있었어요. 목욕탕에 가서 서로 때를 밀어주고, 초당동에서 두부전골을 먹고, 호수를 도는 거였어요. 그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지금은 지루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큰 추억이 될거야. 언젠가 여기에 오면 아빠가 떠오를거다.’였어요. 그 말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김의환 : 말하는 사람는 어떤 생각으로 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말들이 살면서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메이슨은 신체적으로도 변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성격이나 말투나 사고방식이 형성되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걸 보면서 우리의 습관이나 성격이나 취향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생각해봤어요. 그때 그런 일들이 쌓여서 이런 나를 만들었다는 걸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 같아요. 윤성용 : 쌓여간다는 말이 와 닿네요. 보통 우리는 한 순간에 드라마틱하게 인생이 바뀌거나 사람이 변하기를 원하잖아요. 사실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건,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언제 변했는지도 모르게 찾아오거든요. 어쩌면 이 영화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다 김의환 : 마지막 장면에서 대학 기숙사에 들어간 첫날에 메이슨이 새로운 친구들과 하이킹을 가요. 너무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고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순간을 잡는 게 아니라,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것 같다.(The moment seizes us.)”는 말을 하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영화가 끝나잖아요. 그 말이 참 좋았어요. 윤성용 : 아마 감독이 12년 동안 영화를 찍으면서 하고 싶었던 말을 가장 마지막 대사에 넣었을텐데요. 고수리 작가님의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라는 책에 이 대사에 대한 글이 있어요. 잠깐 읽어 드릴게요.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삶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하니까. 어떤 순간에는 살아있음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김의환 :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에요.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낸 날도 있지만, 순간의 흐름에 따라서 저절로 살아진 날도 있었어요. 메이슨의 엄마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이들을 죽어라 키우기도 했지만 반대로 아이들이 함께 자라주기도 했어요. 삶이란 게 참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성용 : 지금 우리를 형성한 것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생각해보면 묘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고 운명이라는 걸 믿게 되기도 하고요. 김의환 : 섞여 있죠. 그러면서도 전적으로 내 힘으로 뚫고 나가야할 때도 있구요. 예를 들어, 메이슨의 첫사랑은 어떻게 해도 잘 안되는 관계잖아요.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 관계는 잘 이루어지지 않죠. 어쩔 수 없는 단면인데 너무나 소중한 기억이라서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꼭 들어갈만한 장면인 것 같아요. 당신의 인생이 영화가 된다면 윤성용 : 혹시 어떤 감독이 찾아와서 당신의 12년을 영화로 찍겠다고 한다면 수락하실 건가요? 김의환 : 나의 12년을 찍는다면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하기는 했어요. 메이슨의 자리에 나를 넣는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생겨났을까. 내가 출연하는 <보이후드>를 상상해 보았고,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게 이 영화의 큰 가치인 것 같아요. 특별하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영화가 있고, 각자의 성장 영화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방금 하신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신다면요? 윤성용 : 저는 제 인생을 영화로 찍어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도 글을 쓰면서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최근에 책을 쓰려고 지금까지 쓴 글들을 모아봤는데요. 저의 어린 시절들, 내가 당시에 고민했던 것들을 모아보니 인생의 축약본처럼 느껴지더라구요. 김의환 : 저도 예전에 쓴 네이버 블로그 글이나 지식인에 남긴 질문, 싸이월드나 다음카페 등 온라인에 남긴 흔적들을 찾아보곤 하는데요. 그걸 보면 너무 오그라들고 웃기긴한데, 지금의 나랑 엄청 다르진 않은 거예요. 엄청 민망해 하면서도 스크랩하고 지우는 작업을 요새 하고 있어요. 내가 한결같은 면이 있구나, 그때도 지금의 내 성향이 배어 있었구나, 내가 어디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들을 했어요. 윤성용 : 그때 당시의 나는 기록해두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그때의 나와 기록해둔 나 사이의 괴리를 정말 크게 느끼거든요. 예를 들면, 스무살에 쓴 일기장을 읽어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때의 나는 정말 힘들었구나, 하고요. 김의환 : 저는 8년 전 일기가 에버노트에 남아 있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데드라인을 너무나 힘들어 했구나, 연애할 때도 이런 것에 설레하고 이런 것에 쑥맥이었구나, 생각했었어요. 이렇게 지나온 순간들을 기억하고 돌아보는 것이 제게는 의미 있는 일인데, 이 영화를 만든 감독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이후드> 한 줄 평 윤성용 : 한 줄 평을 해볼까요? 저는 ‘우리가 지나온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12년’ 정도로 정리해봤어요. 이 영화를 보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김의환 : 저도 비슷해요. ‘시간과 순간 속에서 이렇게 자라온 우리를 응원하며.’ 이 영화를 보면서 메이슨이 겪어온 순간들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지만, 내가 지금 여기에 오기까지 나를 만든 순간들과 사람들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영화가 끝나도 나의 영화를 그려보게 되는 영화인 것 같아요. 윤성용 : 사실 특별한 영화라고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어요. 정말 우리가 겪어왔던 평범한 이야기 거든요.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고, 지금의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 것도 그런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12년 동안 영화 속에서 물리적으로 변화하는 아이를 보면서 같이 성장하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 점에서 서사로서는 평범하지만 영화로서는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의환 : 맞아요. ‘시간이라는 마법’이라는 한 줄 평도 생각했었는데요. 만약 이 영화를 대역이나 CG를 써서 찍었다면 아마 감동이 많이 반감됐을 거예요. 그냥 시간을 흘러가게 놔두고 찍은 거잖아요. 시간이라는 마법 때문에 영화가 더 가치있어졌고,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해요. 30대가 되니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기 쉬운데, 이런 영화를 보면서 잠시 돌아보기 좋은 계절이 왔잖아요. 아직 안보신 분들도 이 영화를 보고 같이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xyzorba film은 어땠어요?" 보내주는 피드백은 늘 꼼꼼히 읽고 있어요.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요. 친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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