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이번주에 읽은 책을 소개해드릴게요. 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김초엽 작가의 첫 SF 단편소설집입니다.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를 받은 김초엽 작가는 2017년 제 2회 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우리 SF의 우아한 계보'라고도 불리는 이 책에 대해서 세 명의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SF 소설을 좋아하시나요? 윤성용 : 오늘 저희가 다뤄 볼 책은 김초엽 작가님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인데요. 승원 님이 추천해 주셨어요.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알게 되셨나요? 김승원 : 삼청동에 제가 자주 가는 '갈다'라는 과학 서점이 있어요. 그곳에서 유독 이 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넘겨 보니까 작가 소개에서 또 한 번 관심이 가더라구요. 언젠가 읽어봐야겠다고 점찍어 두었던 책이었어요. 김버금 : 저도 책 제목만 알고 읽어보진 못했었어요.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까 단편소설집이더라고요. SF 소설이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고, 작가님의 전공이 드러나는 부분들이 많아서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윤성용 : 김초엽 작가님은 2019년에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저는 2019년 올해의 작가가 김버금 작가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웃음) 혹시 SF소설을 즐겨 읽으시는 편이신가요? 김승원 : 저는 사실 SF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왠지 장황한 이야기나 일상생활에서 접해볼 수 없는 소재를 다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손이 잘 안 갔어요. 그런데 이 소설은 현실과 많이 맞닿아 있다고 할까요. 소외된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윤성용 : 보통 SF 소설이라고 하면 낯선 사회에 대한 묘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어떤 선택들을 하게 될지, 이런 것에 초점이 맞춰진 소설인 것 같아요. 과학적 사실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역할일 뿐이고, 실은 인간에 대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버금 : 저도 성용님 의견에 동의해요. 이 소설에 설정된 공간이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과학적 지식을 알아야할 필요는 없어요. 완전히 새로운 상상력으로 구성된 세계가 우리가 사는 이곳과 닮아 있어서, 현실의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승원의 픽 :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 윤성용 : 이 책에는 일곱 개의 단편이 실려 있어요. 어떤 에피소드를 재밌게 읽으셨는지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김승원 : 저는 첫 번째 에피소드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재밌게 읽었어요. 어느 행성의 마을에서는 성년이 되면 ‘시초지’라는 곳으로 순례를 떠나게 돼요. 그런데 순례를 떠난 사람들 중에 일부만 돌아오는 거예요. 그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었던 주인공이 순례에 대한 비밀을 캐내면서 이야기가 전개돼요. 윤성용 :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때, 주인공은 선택을 해야만 했어요. 내가 익숙하고 편안한 곳에서 살 것인가? 현실과 맞서서 대항하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영화 <매트릭스>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김버금 : 저는 이 문장이 좋았어요. ‘시초지에는 우리와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많고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질 거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 때문에 그 세계를 택하는 것이다.’ 단순히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이 살고 있는 세계를 좋은 세계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거죠. 남녀 사이의 사랑을 떠나서 같은 집단과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연대를 말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우리에게도 이런 순례를 떠나는 여정이 있을까요? 김승원 : 저는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간 여행을 갔다 왔어요. 그 전의 제 모습을 많이 버리려고 노력했던 시기였거든요. 그 여행을 통해서 뭔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김버금 : 저는 얼마 전에 독립을 했는데, 계약서를 쓸 때 실감이 나더라구요. 모두들 다른 방식이겠지만 새로운 세계와 맞설 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윤성용 : 새로운 세계와 맞설 때, 내가 기대한 모습과 다르면 도망치고 싶어지잖아요. 예전에 내가 익숙했던 곳에 머물고 싶고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하면서, 힘들지만 나아가는 선택을 할 때 진정한 어른이 되지 않나 싶어요. 김승원 : 책 뒤에 이런 문구가 있어요.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 많이 힘들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맞서면 행복할 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에피소드인 거 같아요.성용의 픽 : 관내분실 윤성용 : 저는 ‘관내분실’이라는 에피소드가 재밌었어요. 이 시대에는 ‘마인드’라는 기술이 생겨서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기억을 도서관에 보관해요. 마인드를 통해서 대화도 할 수 있어요. 미래의 납골당 같은 느낌인 거죠. 주인공은 임신을 한 여성이에요. 돌아가신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는데 문득 돌아가신 엄마의 마인드와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도서관을 찾아갔더니 엄마의 마인드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게 되고, 잃어버린 엄마의 마인드를 찾는 여정이 시작돼요. 김승원 : 딸이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엄마의 흔적이 담긴 물건을 고를 때, 여자로서의 엄마의 삶이 어땠을지 유추하게 되잖아요. 같은 여자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모습이 좋았어요. 김버금 : 저도 엄마를 하나의 사람으로 이해하고 기억을 수집해 가는 과정이 좋았어요.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한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성용 : 여러분에게는 어떤 것이 있나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고유한 물건이 있나요? 김승원 : 지금 떠오르는 건 일기장, 그리고 친구들이 써 준 편지요. 김버금 : 저도 비슷한 거 같아요. 나를 표현 수단이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림도 그릴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고 춤추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제일 많이 접하는 글이 우리의 고유한 기록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윤성용 : 저도 제가 쓴 글과 제가 찍은 사진들이 생각나는데요. '관내분실' 읽고 나서,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오히려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이라든지,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라든지. 미래에는 그런 인간다운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고 더 잘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에피소드였습니다. 버금의 픽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버금 : 저는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재밌게 읽었어요. 이 에피소드는 우주정거장에서 오지 않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안나'라는 할머니의 이야기인데요. 웜홀을 이용해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아주 먼 곳까지 여행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그리움의 정서가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찾아갈 수 없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갈 수 있는 데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슬픔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김승원 : 안나 할머니가 굉장히 유명한 과학자였잖아요. 결국에는 웜홀이라는 것이 발견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연구해왔던 기술이 물거품처럼 잊히게 되죠. 그 부분을 읽으면서 <애드 아스트라>라는 영화가 생각났어요. 김버금 : 독일에 가짜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해요. 요양원 노인분들이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것을 대비해서 가짜 버스 정류장을 만들어 놓은 거예요. 거기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 거죠. 안나 할머니도 냉동기술로 거의 영생이 가능하게 됐잖아요. 어쩌면 안락한 삶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워하는 대상을 찾기 위해 떠나겠다는 마음이 인상깊었어요. 윤성용 :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외롭고 고독하고 그리운 것은 계속 그대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해보면 50년 전 사람들은 지금 우리 시대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상상했을 텐데요. 사실 지금 저희를 보면 똑같은 고민을 하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될까 라는. 아마 미래에 과학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우리의 고민은 여전히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김승원 : 기술이 발전하면서 거리는 점점 좁아지는데 오히려 세대 간의 간격은 넓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외국에 있는 내 또래 친구들하고 연락을 잘할 수 있지만, 집에 있는 우리 아빠와는 멀어질 수도 있는 거죠. 과학기술이 물리적 거리를 좁혀주는 면도 있지만 그 기술을 잘 다룰 줄 모르는 사람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게 하는 것 같아요. 이것도 우리가 안고 가야 하는 과제라는 생각이 들어요.<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총평 윤성용 : 마지막으로 총평을 해볼까요. 김승원 : SF 소설이라고 해서 우주전쟁이나 외계 생명체 같은 방대한 스케일을 떠올렸는데요. 예상외로 따뜻하고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많아서 좋았어요. 그리고 소외된 인물들이 스스로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주체적인 모습도 좋았던 것 같아요. 김버금 : 저도 처음에는 SF소설이라는 특성에만 집중해서 봤었는데요. 읽다 보니까 인간에 대한 고민과 질문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집중해서 읽게 됐던 것 같아요. 책 마지막 해설에 이런 말이 있어요. ‘첨단과학기술로 인류가 도달한 세계는 정말로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되었을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차별과 억압, 고통과 소외는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까?’ 우리가 현실에서 계속 고민해야 되는 부분을 던져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읽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어요. 윤성용 :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인간이란 무엇이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지,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김초엽 작가님도 그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대답을 보여줬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올해 읽었던 것 중에 가장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요. 김버금 : 이 책은 어떤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까요? 윤성용 : SF소설에 대해서 막연한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장르소설이기도 하고,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이 소설을 읽어보면 그런 편견이 많이 깨질 것 같아요. 접근하기 쉬운, 지금 우리에 대한 이야기여서 SF 입문용으로 추천드립니다. 김버금 : 요새 사람들이 문과와 이과를 많이 나누잖아요. 이 책은 문이과의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책이에요. 작가님의 전공과 관련된 용어나 과학기술이 세밀하게 나와서 이과 분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고요. 저와 같은 진성 문과 분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승원 : 저는 요즘 밖에 못 나가셔서 답답하신 분들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우주와 먼 미래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책이니까, 부담 없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P.S 이번 뉴스레터 발행이 하루 늦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발행 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오늘 xyzorba book은 어땠어요?" 보내주는 피드백은 늘 꼼꼼히 읽고 있어요.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요. 친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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