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이번 달에 읽은 책을 소개해 드릴게요. 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오늘은 '상실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어느 날, 서로 다른 세 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따뜻하고 아늑한 카페였습니다. 각자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마다 들고 온 <상실의 시대> 또는 <노르웨이의 숲>을 갈색 나무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간단하게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 윤성용 : 진지하고 신중한 편입니다. 철이 없어 보일 정도로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딴짓을 좋아합니다. - 김버금 : 사사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앓는 마음을 안는 사람이 되기를 꿈꿉니다. 늦은 밤에 씁니다.(브런치) - 김승원 : 호기심을 원동력삼아 살아갑니다. 긴 안목을 가졌고, 역설적인 것에 매력을 느낍니다. 하루키가 싫어한 '상실의 시대' 민음사 <노르웨이의 숲> 김승원 : 책 제목에 대해서 궁금해요. 원래 제목은 '노르웨이의 숲'인데, 국내에서는 왜 '상실의 시대'로 나왔을까요? 김버금 : 처음에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판했을 때 잘 안 팔렸다면서요? 윤성용 : 맞아요. 1988년에 한국에서 원제목으로 내놓았을 때 인기가 없었어요. 그 후에 문학사상사에서 <상실의 시대>로 번안해서 출판했고 그게 성공했죠. 김승원 : 아, 그랬군요. 윤성용 : 막상 하루키는 이 제목을 마음에 안 들어했다고 해요. 제목을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제목이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지금의 하루키는 없었다.'라며 거절했다는 후문이 있죠. 김승원 : '노르웨이 숲'이 비틀즈의 노래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이 소설을 대변할만한 제목인지는 모르겠어요. 김버금 : 저는 '상실의 시대'가 이 소설을 관통하는 메타포를 잘 함축한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은유적인 표현으로 '노르웨이 숲'도 괜찮은 것 같아요. '상실의 시대'는 너무 직접적인 느낌이 있어요. 윤성용 : 저도 공감해요. '상실의 시대'는 이미 해석된 제목이라서 처음부터 프레임을 갖고 읽게 돼요. 왜 하루키가 이 제목을 싫어했는지 알 것 같아요.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한 <상실의 시대> 등장인물 소개
와타나베. 귀엽거나(?) 쿨하거나 와타나베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을 뿐이야. 그런 짓을 해봐야 실망할 뿐이거든. " 김승원 :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와타나베'가 정말 좋아졌어요. 모든 등장인물들이 와타나베와 있으면 마음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되거든요. 아마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이어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윤성용 :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김승원 :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와타나베가 죽은 기즈키를 생각하면서 '난 이제 너와 함께했던 내가 아니야.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라고 다짐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런 면에서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느꼈어요. 윤성용 : 와타나베를 귀엽다고 생각하시다니 정말 낯선데요? 허허... 저는 와타나베의 '쿨함'을 좋아해요. 예를 들면, 왜 수업에서 출석체크를 안했냐는 질문에 "오늘은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라고 대답하는 그런 종류의 쿨함이죠... 20대 중반에는 그런 게 정말 멋있어 보였어요.김승원 : 약간 '쿨함'과 '중2병' 사이에 있는.... 김버금 : 음, 예전엔 그런 게 멋있어 보이셨군요. 와타나베는 나가사와 선배가 한 말처럼 '가장 인간다운 사람'인 것 같아요. 미성숙하고, 불안하고, 흔들리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가장 인간다운 인물이죠. 미도리. 봄날의 곰만큼 네가 좋아 미도리 "좋아, 기다려줄게. 하지만 나를 안을 때는 나만을 생각해야 해." 김버금 : 저는 '미도리'라는 인물이 가장 재밌었어요. 김승원 : 맞아요.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죠. 김버금 : 어떻게 이런 인물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재기 넘치고 위트 있고 자유분방하고... 미도리에게서 명언들도 많이 나왔어요. 윤성용 : 어떤 명언들이 있었죠? 김버금 : '봄날의 곰만큼 네가 좋아.'라든가 '인생은 비스킷 통' 이야기라든가. 그중에서도 '딸기 쇼트 케이크'이야기가 가장 유명하죠. 김승원 : 미도리가 말하는 완벽한 사랑이란, 딸기 쇼트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말하고 그걸 사 오면 창밖으로 던져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미안해. 다른 거 먹고 싶은 건 없어?"라고 말하는 거죠. 겉으로 보면 천방지축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너무 빨리 성숙해버린 캐릭터예요. 윤성용 : 맞아요. 미도리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에게 만족할만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자신만을 향한 100%의 사랑을 찾으려고 하죠. 김승원 : 다들 '딸기 쇼트 케이크'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100% 공감했거든요. 윤성용, 김버금 : 오오, 정말요? 김승원 : 저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미성숙해 보일 수도 있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어리광도 부리고, 변덕이나 투정도 부릴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솔직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죠. 그게 정말로 사람들이 원하는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어요. 김버금 : 어떤 말인지 알겠어요. 어쩌면 그런 미성숙한 모습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오코. 너무나 연약해서 사랑스러운 나오코 "나를 언제까지나 잊지 말아줘.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줘." 윤성용 : 이쯤에서 '나오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김승원 : 나오코는 이 소설에서 가장 슬픈 인물이에요. 어릴 적엔 친언니의 자살을 목격했고, 소울메이트이자 연인이었던 기즈키도 자살했고요. 윤성용 : 그래서 결국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어요. 나오코가 왜 죽음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세요? 점점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갑작스러운 선택을 했잖아요. 김버금 : 소설 초반에 우물 이야기가 나와요. 저는 이게 나오코의 상태를 설명하는 상징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겉으론 괜찮아 보이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회복될 수 없는 상처가 있고 그곳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든 거죠. 윤성용 : 아마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고. 이런 상실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김버금 : 와타나베가 회고하는 장면에서 유일하게 굵은 글씨로 적힌 문장이 있어요.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나오코에게는 기즈키의 죽음이 종결이 아니라 시작인 거예요. 예를 들면, 사랑은 이별로 끝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별은 어떻게 이별할 수 있을까요. 삶은 죽음으로 끝낼 수 있지만, 죽음은 어떻게 끝낼 수가 있을까요. 윤성용 : 그럴 수 있겠네요. 만약 기즈키가 살아있었다면 이별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김승원 : 사랑하는 상태에서 기즈키가 일방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끝낼 수도 없었다는 거군요. 김버금 : 나오코로서는 죽음밖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거죠. 김승원 : 나오코는 너무 연약해서 사랑스러운 인물이었어요. 윤성용 : 맞아요. 나가사와 선배와 레이코. 상실에 대처하는 방식 레이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받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게 마련이야. 인생이란 그런거야." 윤성용 : '나가사와 선배'는 쿨함의 정점에 서있는 인물이에요.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읽었다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겠군"이라고 말하면서 와타나베와 친해지잖아요. 속물들을 비난하지만 실은 자신이 가장 속물인 사람이기도 해요. 애인이 있지만 게임처럼 가볍게 다른 여성들을 만나고,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합리화하고요. 김승원 : 어쩌면 나가사와 선배가 가장 연약한 사람 아닐까요. 너무 연약해서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거죠. 윤성용 : 맞아요. 깊고 성숙한 관계를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그걸 멋지게 포장하죠. 와타나베는 그런 나가사와 선배를 보면서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요. 김버금 : 인물마다 '상실에 대처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 것 같아요. 나가사와 선배는 상실이 두려워서 회피하는 유형이고요. 미도리는 상실이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순간을 즐기는 유형이에요. 와타나베는 이런 다양한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상실을 대처하는 방식을 배워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성용 : 그런 점에서 '레이코'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성숙한 사람이에요. 본인도 여러 번의 좌절을 겪었지만 결국 극복해내죠. 와타나베는 상실을 경험할 때마다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노숙을 하면서 방황하는데, 레이코가 그걸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해요. 김버금 : 방황하는 인물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죠. 김승원 : 저도 주변에 레이코 같은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엔딩. 어느 곳도 아닌 장소에서 와타나베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윤성용 : 엔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나오코의 장례식을 마친 후,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죠.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해요. 미도리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라고 묻는데, 와타나베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대답하지 못하죠. 그렇게 소설이 끝나요.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김버금 : 엔딩에서 상실의 양면성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마지막 장면도 장례식이고, 레이코와 헤어질 때도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훔쳐보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런 시선엔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있었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거든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거잖아요. 상실은 '부재(不在)'예요. 아니 부에 있을 재. '무(無)'가 아니라 '있음(有)의 부정형'인 거예요. 윤성용 : '상실'이란 애초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다가 없어진 것이군요. 김버금 :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 탄생과 죽음은 모두 상실인데, 내가 갖고있던 것을 잃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와타나베는 결국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와타나베는 시작하는 지점도 끝나는 지점도 아닌 그 경계에 서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설명할 수 없음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상실과 재생이 반복되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서있는 것처럼요. 김승원 : 마지막에 레이코가 와타나베에게 "행복해야 돼."라고 말하잖아요. 저는 이게 꼭 살아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은 건 나를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을 한 거에요. 마치 물속에 빠져있는 사람처럼,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나에게 손을 뻗어달라고 말하는 거죠. 윤성용 : 예전의 와타나베는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자기 주위에 성벽을 쌓아놓고 타인과의 관계를 차단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었죠. 와타나베는 이제 상실을 극복하며 살아가기로 결정했고, 타인에게 기꺼이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상실의 시대> 총평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상실의 시대 윤성용 :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해서 총평을 한다면요? 김승원 : 책을 읽는다는 건 텍스트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배설하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정리되지 않은 내 무의식이 책 속의 명확한 문장과 만났을 때 정말 속 시원한 느낌이 들잖아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문장을 만난 순간들이 몇 번씩이나 있었어요. 다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런 소설을 하나 더 써주었으면 좋겠어요. 김버금 : 성장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것을 연습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죽음일 수도 있고, 이별일 수도 있고요. 김광석 노래처럼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잖아요. 우리는 보통 성장에 대해선 무언가를 쟁취하거나 얻는 걸 이야기해요.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잃어가고 있으며, 우리가 상실들을 겪으면서 어떻게 성장해가는지를 그린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상실의 의미, 그리고 그것을 성장과 연계해서 생각해볼 수 있어서 참신하고 좋았어요. 윤성용 : 저는 상실의 시대를 읽을 때마다, 이 책에 매료되었던 시절의 저를 떠올려요. 그때의 나는 이런 문장을 좋아했구나, 나는 이런 감정과 순수성에 공감했었구나.라고 회상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2,3년마다 한 번씩은 이 책을 꼭 읽어볼 것 같아요. 만약 상실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 F E E D B A C K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요 "오늘 xyzorba book은 어땠어요?" 처음으로 목요일 레터를 보내드리게 되었어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의견을 통해 나아지도록 노력할게요.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친구! 변하지 않는 가치를 사랑하는 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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