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이번주에 쓰고 읽고 본 콘텐츠를 보내줄게요.
[ 엑스-와이-조르바 ]
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이번 주에 쓰고 읽고 본 콘텐츠를 보내줄게요
✉️ L E T T E R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
어릴 적부터 백일장에는 젬병이었습니다. 유난히 감성적이던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쓴 '동백꽃 필 무렵' 독후감을 읽고서 나를 백일장에 내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그 독후감은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개의 독후감을 짜깁기한 것이었는데, 선생님의 감동한 얼굴 앞에서는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백일장은 소풍처럼 야외에서 했습니다. 기다란 흰 종이와 주제를 내주고서는, 시간 내에 자유롭게 써오는 방식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방식의 글쓰기에 약했습니다. 나는 일찍부터 컴퓨터를 다루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그림 그리듯 썼습니다. 일단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적었고, 그 사이를 산발적으로 채워나가는 식이었습니다. 중간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거나 순서를 바꾸거나 끼워 넣지 않고, 시작부터 끝까지 한 숨에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백일장에서 주어지는 주제는 (당시 나에겐) 모두 바보 같았습니다. 이를테면 <'신발'을 주제로 산문을 쓰시오>라는 식이었습니다. 도대체 신발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나는 흙이 묻어 꼬질꼬질한 나의 신발을 바라보다가 시간의 절반을 써버렸습니다. 결국 내가 써낸 첫 문장은 '신발을 벗자'였습니다. 우리는 왜 답답하게 양말도 신고, 신발도 신고 다니는 걸까. 맨발로 이 촉촉한 흙길을 걸으면 기분이 정말 좋을 텐데. 발가락도 요렇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 텐데. 이런 내용을 써내리다가 시간이 끝나가는 바람에, 마지막 문장도 '신발을 벗자'로 끝내고 제출해버렸습니다. '신발'이 주제인 백일장에서 신발을 벗자고 말한 나의 산문은 '참가상'정도에서 그쳤습니다. 다른 백일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어 선생님은 나의 백일장 성적에 의아해하면서도 나에 대한 믿음이 있으셨는지, 나를 계속해서 백일장에 내보냈습니다. 나는 백일장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주관이 뚜렷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백일장 흰색 종이를 볼 때마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없구나.'라고 선생님 몰래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 내가 지금은 매일마다 글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인생이란 게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너는 글쓰기를 좋아하게 될 거야. 네가 쓴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거야.' 백일장 종이를 받아 고민하는 녀석에게 이 말을 전한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가만히 웃었을까, 안심했을까, 아니면 의아하다는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금 종이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을까. 2019년 12월 첫 주 새로운 마음으로 윤성용 드림
✒️ R E A D I N G 당신이 꼭 읽었으면 하는 글
나는 그때, 내가 가진 모든 가능성이 가장 빛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서른이 지나면 그것들이 서서히 사라질 거라 믿었다. 20대의 삶은 정말이지 가능성의 나날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뭔가가 이뤄진 게 아니라 가능성’만’ 있다는 것에 괴로워하는 순간의 연속이기도 하지만...[더 읽기] 20대는 많이 다치는 시기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가능성은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30대가 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가능성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명확한 길을 걷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나의 가능성과 선택지는 좁아지지는 않는다는 걸요. 다만 내 삶과 관계없는 질문을 버릴 수 있게 될 뿐입니다. 나에게 60세 이후의 삶은 '돈'이 아닌 '일'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것은 공공기관에 33년 간 재직하시다 정년퇴직하신 아버지를 보면서 느낀 바가 컸다. 돈은 있지만, 일이 없을 때 사람이 빨리 늙는다는 것을 보게 됐다. 소득이 어느 정도 확보됐다면 나이 들어서도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읽기] '안정성'은 진로를 결정하는 큰 요소입니다. 그런 면에서 공공기관은 취업시장에서 선호하는 직장입니다. 그러나 여기 공공기관을 그만 둔 사람이 있습니다. 크게 4가지 이유를 말하는데요.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삶과 일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안정성' 이상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내가 나다울 수 있는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M U S I C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아서
제 인생에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그것은 히사이시 조의 공연을 관람하는 것입니다. 히사이시 조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거의 대부분 담당했죠. 그 중에서도 저는 'One Summer's Day(어느 여름날)'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 음악을 듣다보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고,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뭉클한 감정이 느껴지 거든요. 아참, 참고로 히사이시 조(Hisaishi Joe)는 본명이 아니래요.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 퀸시 존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변형하여 예명으로 삼았다고 하네요. 📮 F E E D B A C K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요 "오늘 xyzorba는 어땠어요?"
보내주는 피드백은 늘 꼼꼼히 읽고 있어요. 좋은 말은 가슴에 두고, 지적은 기꺼이 반영할게요. 답장을 원한다면 메일 주소를 함께 남겨주세요. 🔗 L I N K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워요 * Image by unsplash * llustration by Icon8
PS. 좀 더 다양해질 xyzorba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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