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이번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줄게요.
오늘 이야기할 사람들 🦸♂️ 윤성용 : 진지하고 신중한 편입니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딴짓을 좋아합니다. 🕵️♂️ 김의환 : 출판잡지 에디터. 뉴스레터 서비스 ‘오글리의 심야편지’ 휴업중. 잡다하게 보고 듣고 읽는 미디어 중독자입니다. 이제는 쓸 차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줄거리 부모님의 이혼으로 서로 떨어져 살게 된 초등학교 6학년인 형 코이치와 4학년인 동생 류노스케. 형 코이치는 가고시마현에 화산이 폭발해서 가족이 다시 모여 살길 바란다. 그러던 중 새로 생긴 고속열차가 서로 만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을 듣는다. 형과 동생, 그리고 5명의 친구들은 각자의 소원을 끌어안고 기적 여행을 떠난다. 진짜로 기적이 일어날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왼쪽 : 동생 류노스케 / 오른쪽 : 형 코이치 김의환 :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진짜로>)를 성용 님께서 골라주셨죠. 무척 좋았어요. 윤성용 :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지난번에 다루었던 <빌리 엘리어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어요. 실제로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공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언제나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성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잘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고민하다가, 이 영화를 떠올렸어요. 김의환 : 그런 의미라면 딱 맞는 영화인 것 같아요. <진짜로>의 제목을 영화 대사에서 가져왔다고 하더라고요. 제목이 입에 잘 안 붙는데, 정말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윤성용 : 저는 이 제목이 마음에 들었어요.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도 잘 살려주는 것 같고요. 전반적으로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영화예요. 김의환 : 맞아요. 재미있고 사랑스럽고 활기차고. 먹구름 낀 장면이 별로 없고요. 전체적인 톤도 화사하고, 아이들이 계속 달려요. 계속 수영하고 걷고 뛰고. 저마다 고민들이 있고 그 고민의 무게가 크지만, 거기에 잠식당하거나 신파로 빠지거나 극단으로 치닫는 인물이 없다는 점도 좋았어요. 윤성용 : 형과 동생이 크게 대비되는 것도 재밌었어요. 형은 가족이 다시 합쳐졌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고, 반면에 동생은 그렇게까지 가족의 결합을 바라지 않아요.김의환 : 이 영화에서 그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두 도시, 두 형제, 두 가족으로 분리된 상황이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잖아요. 기차가 양쪽에서 오듯이. 그 이미지를 갖고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기차가 마주 지나가는 순간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 자체는 어쩌면 별거 아닌데. 구체적인 지명, 배경이 들어가서 더 분위기가 살았어요. 시골마을과 대도시가 있고, 구마모토가 중간에 있고요. 그런 여러 풍경을 보면서 여행이 가고 싶어졌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김의환 : 배경을 활화산이 있는 '가고시마현'으로 정한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화산이 폭발해서 가족이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상상력도 천진난만하고요. 윤성용 : 맞아요. 화산재의 상징은 무엇일까요? 영화가 시작할 때, 형 코이치가 방에 쌓인 화산재를 청소를 하고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오늘은 화산재가 안 쌓이겠네.”라는 대사로 끝나거든요. 김의환 : 처음엔 활화산이 있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마지막에는 화산재가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잖아요. 이제는 가족이 결합된 상태로 돌아가지 않아도, 충분히 각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윤성용 :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었어요. 형 코이치는 이 상황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 했어요. 활화산 근처에서 사는 것이든, 가족이 떨어져 있는 것이든.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해요. 김의환 : 화산 폭발은 재난이고, 화산재는 불편한 것인데요. 사실 아이에게는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만큼 급박한 상황이었어요. ‘엄마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 그러면 우리 가족은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어.’라고 생각했잖아요. 뒤로 가면서 현 상황에서 행복의 가능성을 찾는 것 같네요. 윤성용 : 결국 '인생이란 원하지 않는 것도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거구나.'라는 걸 깨달은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기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김의환 : 등장인물마다 바라는 기적이나 소원이 나오는데, 외할아버지에게 기적은 가루칸 떡으로 집안이 다시 일어서는 것이었죠. 하지만 색깔을 넣는다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식으로 전통과 타협하지는 않았고요. 자신의 방식대로 했지만 결국 반응이 시원치 않았고요. 하지만 그냥 그런 거예요. 실패는 아닌 거예요. 모두가 자신이 생각했던 기적대로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삶이 망가지거나 더 나빠지지 않거든요. 윤성용 : 삶이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다 되는 게 아니니까요.김의환 : 인물들의 소원이 바뀌기도 해요. 결정적인 장면은 아버지와 형 코이치가 통화하는 장면 같아요. 아버지가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보다 더 큰 일, 이를테면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잖아요. 형 코이치는 그 말에 고민하고, 결국 화산이 터져서 가족이 재결합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지 않아요. 자신은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했다고 하면서요. 윤성용 :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게 어린아이의 마음이잖아요. 여행에서 다양한 경험하면서 결국엔 자신의 일보다 세계를 선택하게 된 거죠. 김의환 : 이때 ‘세계’는 세계평화 같은 거창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여기 나오는 모든 소원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식이잖아요. 그 소원들을 하나씩 보면 시덥잖은 것도 있고 불가능한 것도 있는데요. 그 소원들이 저마다에게 정말 소중하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윤성용 : 맞아요. 아이들 모두 너무나 간절해요. 그것들이 영화에서 작게 여겨지지 않고 하나하나 소중하게 다루어졌어요. '정상가족'이 아니어도 괜찮아
윤성용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요. 그런데 그 가족들이, 제가 이 단어를 좋아하진 않는데, ‘정상 가족’이 아닌 형태를 주로 다루더라고요. 이 영화에서도 부모님이 이혼했고, 형과 동생이 떨어져서 사는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런 가족을 설정함으로써 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요. 김의환 : 마침 며칠 전에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 지음, 동아시아)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서문의 한 대목을 읽어볼게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말한다. 바깥으로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 간주하고 차별하고, 안으로는 가부장적 위계가 가족을 지배한다.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 가장 취약한 아이를 중심에 놓고 가족주의가 낳는 문제를 바라보는, 되게 좋은 책이어서 소개하고 싶어요. 윤성용 : 확실히 세상이 변하고 있어요. 어릴 때만 해도 핵가족이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생각했고 가족이 해체된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니까요.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는 거고,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가족이 있는 것뿐인데 말이에요. 김의환 : 저만 해도 1인 가구고, 별별 가족 형태가 많잖아요. 이제는 정상가족 범주 안에 들어오지 않는 가족 형태가 훨씬 많을 수 있거든요. 게이 커플도 있고, 동거하는 사람들, 아이가 없는 부부 등등. 그래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이라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체제를 해체하면서, 어딘가 어긋난 형태로 그려내면서 그 안에서 친밀한 관계가 주는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면을 다 가져가는 것 같아요. 이 영화 속에서는 각자의 가족이 새로운 형태로 꾸려나가는 공동체를 보여줌으로써. 굳이 ‘가족’ 형태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해요. 윤성용 : 저도 그런 점에서 위로가 됐어요. 김의환 : 또 헤어진 부모에 대해 아이들이 서로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부모가 잘못해서, 이혼해서 아이들에게 상처 준다는 식으로, 서로 가해지와 피해자를 만드는 식으로 만들지 않고. 아이들도 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의 사정을 인정해주고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요.
우리가 바라는 기적은 김의환 : 영화를 보면서 어린 날에 제가 간절하게 소원했던 것이 있었나 생각해봤어요. 혹시 생각나는 게 있으세요? 윤성용 : 정말 많았던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던 거요. 집에서 절대 못 키우게 했었거든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기도도 열심히 했어요. 혹시 생각나는 소원이 있으신가요? 김의환 : 키가 크게 해달라는 것도 있었고요. 빨리 달리고 싶었다는 것도 있었고요. 윤성용 : 음,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때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거든요. 물론 그 여자애는 제가 좋아하는지 몰랐지만요. 그 여자애가 저를 좋아하게 해달라고 소원 빌기도 했었네요. 김의환 : 갖고 싶은 게 있을 때도 간절했던 것 같아요. 자전거라든지... 윤성용 : 지금도 일어났으면 하는 기적이 있으신가요? 김의환 : 딱 하나인데요. 갑자기 먼저 떠나간 친구가 보고 싶어요.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윤성용 : 그러시군요. 저는 성인이 되고나서 소원이 딱히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제가 원하는 일들이 모두 하나하나씩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원이 생각났어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총평 윤성용 : 마지막으로 총평을 나눠볼까요. 저부터 할게요. “언젠가 당신에게도 있었던, 간절하게 기적을 바라던 순간” 언제부턴가 기적이나 소원을 바라지 않고 살았어요. 그런데 <진짜로>를 보면서 저도 간절하게 기적, 소원을 바랐던 적이 있었구나 떠올렸어요. 김의환 : 두 가지 말해볼게요. “기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간절하기를, 너무 간절하지 않기를” 어린아이에게도 지구를 짊어지는 듯한 무거운 고민이 있는 거고, 그 점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 제가 생각하는 좋은 성장영화의 필수 조건이에요. 윤성용 : 어른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을 텐데 결국 잊어버리나 봐요. 자신도 그런 감정이 있었다는 걸요. 김의환 : 이 영화에 아쉬웠던 점 있으세요? 윤성용 : 저는 없었어요. 사람들이 왜 이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는지 알겠더라고요. 김의환 : 마치 가루칸 떡처럼, 처음에는 밍밍해 보이지만 은은한 맛이 있는 영화죠. 윤성용 : ‘우리는 받아들이면서 어른이 된다’는 문장을 영화로 만들면 이런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의환 : 저는 이런 영화를 좋아해요. 인생의 짧은 며칠, 몇 주, 여름날처럼 짧은 순간만 떼어내서 섬세하게 그려내는 영화. 내 인생에 계속 남을 빛나던 순간이었다는 걸 떠올리게 하는 영화요. P.S 📮 F E E D B A C K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요 "오늘 xyzorba film은 어땠어요?" 피드백은 모두 꼼꼼히 읽고 있어요. 앞으로도 더 나아지도록 노력할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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