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기도에 산다. 서울에 있는 회사로 매일 출퇴근한다. 지하철은 두 번 환승하여 한 시간 남짓을 가고, 15분 정도 걷는다. 나에게 출근길은 뭐랄까, 말하자면 리트머스 종이 같은 것이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고민의 무게에 따라서 시간을 색다르게 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어처럼, 결국에는 하나의 흐름으로 돌아온다. 몸과 마음이 가장 정상적이고 평온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지키는 의식이나 규칙이 있다. 오늘은 내가 출근길에 지키는 것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계획을 세운다.
나는 철저히 계획형 인간이다. 그래서 링컨의 명언을 좋아한다. "나에게 나무를 자를 여섯 시간을 준다면, 나는 먼저 네 시간을 도끼를 날카롭게 하는 데에 쓰겠다." 물론 도끼가 날카롭다고 모든 나무를 자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무엇이 계획대로 되었고 무엇이 계획에서 어긋났는지 확인할 수 있을 때 나는 내 삶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고 느낀다. 출근길에 나는 그날 하루를 시뮬레이션하듯 머릿속으로 상상해본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만약 거친 하루가 예상된다면 <난중일기>의 이순신 장군의 단단한 마음을 떠올린다. 협상을 해야 한다면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를 생각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하루를 준비한다.
책을 읽는다.
출근길은 내가 유일하게 독서하는 시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지하철에서만 책을 읽는다. 직장인이 된 후로 생긴 습관이다. 가방에는 늘 책 한 권을 지니고 다닌다. 아무리 여유가 없더라도 책은 꼭 꺼내서 펼쳐보는 편이다. 내가 읽은 한 문장이 그날 하루를 바꿀 수도 있고, 그 하루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고, 항상 좋은 방향으로 날 이끌었다.
일기를 쓴다.
보통 일기는 하루 일과가 끝나는 밤에 쓰기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밤에 쓴 일기는 낮이 되면 부끄러워진다. 감정과 생각에 매몰되기 쉽다. 누구에게든 보여주지 못하는 글이 된다. 반면에 아침에 쓴 일기는 비교적 맑고 명랑하다. 거창할 것도 없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가볍게 메모한다. 아무런 필터 없이, 문장 호응도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솔직하고 편안하게 쓴다. 그런 일기들이 나중에 좋은 글감이 된다.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나는 웬만하면 출근길에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아침에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시간이 없다. 금방 잠에서 깨어 뻣뻣해진 상태로 길에 나선다. 그래서 계단을 이용한다.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의 움직임, 목과 허리에 느껴지는 하중,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팔, 살짝 가빠지는 숨. 이런 것들을 조금이나마 느끼며 육체와 정신의 싱크를 맞춘다. 그러니까 계단을 오르는 건 낯선 나를 데리고 살아갈 준비 운동인 셈이다.
부모의 보살핌으로부터 떠난 후에는,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작은 규칙들이 나를 키운다. 그것은 아주 조금씩,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나를 바꾸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