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드러나야만 한다. 그래서 인생은 지루할 틈이 없다. 우리는 모두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씩,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상처를 내보일 때 치유가 시작된다.
2.
감정이라는 것도 일종의 소모품이 아닐까. 이를테면 기쁨과 슬픔도, 감동하거나 괴로운 것도 각자마다 정해진 한도가 있는 것이다. 양이 점점 줄어들다가 끝내 얼마 남지 않게 돼버린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 자신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방법은 잘 모르지만 무엇이든 다시 채우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하다.
3.
요즘은 작은 행운들은 나를 즐겁게 한다. 예를 들어, 일기예보와 달리 출근길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정류장에 갔더니 버스가 바로 온다. 마침 나를 위한 자리가 비어있다. 내가 걷는 대로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뀐다.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이 유명한 맛집이었고, 고민 끝에 주문했던 낯선 음식이 눈물 날 만큼 맛있다. 모든 선택이 기대 이상의 결과로 돌아온다. 그럴 때마다 이 세상은 나를 위해 준비된 이벤트처럼 느껴지고, 주위를 둘러싼 모든 풍경이 나를 위한 배려처럼 느껴진다.
일과 사람에 너무 치여 살다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 중 불행과 불운만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자꾸만 '아,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하며 한숨 쉬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더욱 집중해야 하는 건 우리에게 툭 하고 떨어진 작은 행운과 우연한 기쁨들이 아닐까. 좋은 것은 작고 익숙하며 쉽게 잊힌다. 그렇기에 붙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4.
지난 주말에는 커피와 무화과 케이크를 사들고 작은 공원을 찾았다.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정자에는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우리도 그늘이 있는 벤치에 자리 잡았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를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9월의 무화과는 달고 부드러웠다. 주변은 한적했고 햇빛은 바스락거릴 정도로 투명하고 맑았다. 어느 할머니는 우리를 보며 '나도 한 입 다오.'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가 웃어 보이자 '젊은 사람들이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라고 덧붙이며 지나가셨다. 누구에게든 더 친절하게 대하고, 더 많이 웃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올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