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오늘은 최근 나에게 머물렀던 순간과 생각을 진열해 본다. 이 중 무엇 하나는 주인을 찾아가겠지, 하고 시장 귀퉁이 자리에 앉아있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1.
요즘은 이틀에 한 번씩 하천에 나가 줄넘기를 한다. 줄넘기는 무척 단순한 운동이다.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두 손으로 줄을 힘껏 돌리고, 그에 맞추어 뜀을 뛴다. 그걸 일정하게 연속한다. 이토록 간단한 동작에도 요령과 훈련은 필요하다. 처음에는 줄을 넘는 모양이 어색하고 엉성하더니, 몇 개월이 지나자 제법 익숙해졌다. 한창 줄넘기를 하다 보면 묘한 순간을 체험한다. 뭐랄까. 줄을 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마치 고요한 정원을 산책하듯 모든 움직임이 가볍게 느껴졌다. 마음은 차분해졌고 주변 풍경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중력이 미약한 우주에 나 혼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줄넘기는 따분한 행위가 아니게 된다. 작고 간단한 기쁨 하나를 발견했다.
2.
어떤 노래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날이 있다. 이럴 땐 어떻게 마음을 달래야 할까. 나는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모든 현상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을 알지 못한다. 기다림은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주된 방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그런 믿음에 기반한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건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다툼도, 이별도, 좌절도, 부끄러움도 모두 시간이 지나면 저 먼 밑바닥에 짙게 가라앉았다. 이런 내가 고민 상담에 능할 리가 없다. 나는 그저 나 스스로에게 말하듯, 이런 말을 줄넘기처럼 반복할 뿐이다. '분명 힘들고 괴롭고 불안하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늘의 아픔이 언젠가의 추억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3.
6개월 전에 나는 이런 글을 썼다. "요즘은 어느 때보다 마음이 좋다.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나를 괴롭히던 막연한 조급함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견딜 수 있겠다는 초연한 마음도 생겼다. 이 모든 변화가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 삶은 이제 막 어지럽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 완연한 봄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때보다 마음이 좋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글로 남기지 않았다면 미처 몰랐을, 내가 맞이했던 완연한 봄을 희미하게 떠올려 보았다. 아름다운 계절은 왜 이리 쉽게 잊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