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전성기가 지난 4번 타자 같은 심정으로 글을 쓴다. 굳은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서지만, 매번 헛스윙을 연속한다. 그리고 '홈런'을 외치는 관중을 뒤로한 채 덕아웃으로 힘 없이 터벅터벅 돌아가는 것이다. '다음에는 기필코...'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글을 쓴 지 오래되었다. 어릴 적에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참 대단해 보였다. '어쩜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할까.'하고 감탄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요즘은 에세이스트가 조금 더 대단해 보인다. '그들은 어디서 계속 쓸 말을 찾아내는 것일까.' 나는 늘 궁금하다.
처음에는 울분을 동력 삼아 글을 썼다. 쓰고 쓰고 또 써도 달아오른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렇게 글을 쓴 지 5년 즈음됐을까. 지금은 오히려 미지근하게 식은 마음을 데워야 하는 신세가 됐다. 내 글 바구니는 언젠가부터 텅텅 비어 있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내어야 빈약한 글 거리를 한 줌 건져낼 수 있다.
복싱 링에 끝까지 서있는 사람이 진정한 작가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던가. 그렇다면 나는 그가 말했듯 아주 반짝 빛을 발하고 어느새 사라지는, 그런 종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세상을 향해 흰 수건을 던지는 날이 내게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버틸 힘조차 없어도 계속 글을 쓰고 싶다.
'글을 계속 쓰고 싶다'라는 문장을 써놓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런데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이유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전성기가 지난 4번 타자가 홈런을 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돈이나 명예,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상쾌한 소리를 내며 방망이에 맞은 공이 저 멀리 날아가는 순간 때문이 아닐까. 한 번이라도 더, 내 손으로 만든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타석에 들어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전성기가 지난 4번 타자 같은 심정으로 글을 쓴다. 내 이야기가 허공으로 날아가 구름에 묻힌다 해도, 나는 계속 쓰는 인간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