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며칠째 하늘에는 쥐색 구름이 가득하다. 벌써부터 비가 오지 않는 계절이 그립다.
비가 오면 나는 유난히 차분해진다. 습기가 마음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처럼 어떤 감정들은 부드러운 압력에 가로막혔다. 차분한 날이 길어진다는 건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다. 가라앉은 기운이 계속해서 마음을 파고들어 가고 결국은 스스로를 혼자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궂은날에는 지하철 바깥으로 보이는 선로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매끈하고 단단하게 올라온 요철은 달리는 열차를 부드럽게, 그러나 확고한 길로 인도한다. 열차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온전히 나의 의지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이미 정해진 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비가 오면, 나는 이런 종류의 우울한 생각을 하루 종일 해낼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문득 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를 지탱하고 있던, 아슬아슬하고 어설프게 서있던 기둥들 중 하나가 약해지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나머지도 함께 쓰러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내 주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자동 기계처럼 느껴졌다. 잘 다듬어진 나무보다 아무렇게나 피어난 잡초가 더 행복해 보였다.
요즘 부쩍 우울해 보인다는 말에, 날씨 탓이라고 대답할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이건 우울증 같은 게 아니다. 우울한 무드를 너무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물도록 했을 뿐이다. 하룻밤만 지내기로 한 손님이 벌써 몇 주씩 자리를 잡고 있으니 내쫓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건 분명 날씨 탓이다.
아무래도 장마가 모두 지나기까지는 우울하고 쓸쓸한 날들이 계속될 것 같다. 만약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번 장마를 무사히 지나기를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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