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일주일 동안 쓰고 읽고 들은 것을 전해드릴게요.
친애하는, 나의 친구 에게
Photo by Mak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 처연한 마음 종종 한 단어에 몰입하여 헤어 나오지 못하는 때가 있다. 처음에는 그 단어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꾸만 되뇌면서 어감과 의미 속 바다를 이리저리 유영해본다. 이내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까지 다다르고 나면, 낯설었던 언어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된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내가 모르는 세상의 면들을 알아갔다. 요즘은 '처연하다'라는 단어에 빠져있다. 이 말은 한때 논란을 빚었던 이동진 평론가의 영화 <기생충> 한줄평에서 발견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여러 번 읽다 보면 '처연한'에 계속 마음에 걸렸다. (참고로 이동진 평론가는 한줄평이 난해하다는 논란에 대해 언어를 압축적이고 효율성으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납득할만한 이유지만, 숨 가쁘고 낯간지럽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처연하다'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다. 사전적인 뜻은 '애달프고 구슬프다'인데, 본래 의미보다 좀 더 우아하고 깊은 정서가 느껴진다. 이를테면, 젊은 청년의 솔직한 울음보다는 중년의 가슴속에 맺힌 눈물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처연함은 어느 정도 깊이와 세월이 지녀야 비로소 발현될 자격이 주어진다. 만약 처연한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어긋난 시선과 뿌연 눈빛을 통해 무언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겠으나 차마 자세한 사연을 묻지는 못할 것 같다. 게다가 '처연하다'는 적당히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기에 자신이 스스로 처연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 예를 들면, '비에 젖은 수국의 빛깔이 처연하도록 곱다.'라든지 '노래가 어찌나 처연하던지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라는 식이다. 묘하게도 처연함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처량함이나 처참함과 다르게 처연함에는 가엾거나 불쌍하다는 마음이 없다. 어쩌면 원망스럽고 억울한 마음을 '한'이라는 정서로, 미학적으로 승화시켜왔던 한국인 특유의 혼이 이 단어에 녹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거리를 걷다 보면 자꾸만 처연한 것들을 만나게 된다. 청춘처럼 사라질 붉은 단풍들도, 공사가 무기한 연기된 도시 속 낡은 건물도, 바에서 들려온 80년대 여가수의 노래도, 역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반쯤 빈 소주병도 내게는 처연하게 생각된다. 이런 것들에는 더 이상 갈 데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승인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전의 나는 쉽게 지나친 마음이었다. 2021년 11월 15일 처연한 것들을 생각하며 윤성용 드림 당신이 읽었으면 하는 글 좌절에는 토마토 생토마토에 적당한 열과 소금, 충분한 시간을 투입하면 세포 조직이 파괴되면서 변형된다. 그 결과 감칠맛 넘치는 소스로 변모했다. 화학적 마법에 인간의 노력을 더한 결과다. 배은망덕한 소설과는 다르다. 시간과 노력, 열과 성을 다해도 이야기의 신은 응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내 곁에는 그래도 토마토가 있었다. 오늘은 '마켓컬리'에 올라온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를 소개해드려요. 마켓컬리는 식재료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인데요. 작가들이 식재료와 연결 지어 에세이를 쓰는 재밌는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좌절에는 토마토'는 김영하 소설가의 짧은 에세이예요. 5년 동안 쓴 장편소설이 좌절한 순간, 토마토소스를 만들며 위로를 받는 마음을 담았어요.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소설과 다르게, 요리는 노력에 충실한 결과를 보여주니 반가운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은 좌절하는 마음이 들 때 어떤 요리를 하고 싶으신가요?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 이소라 - 그냥 이렇게 그냥 이렇게 나의 맘 모두 준다 해도 우린 다시 그 자린 걸 지난 밤을 버려진 채 그대 또 외면하나요 오늘은 이소라의 '그냥 이렇게'를 소개해드립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연남동의 어느 LP바에서였어요. 색소폰 연주와 함께 이소라의 우아한 음성이 흘러나오는데,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작은 호흡까지 강약을 유려하게 조절하는 노랫소리를 듣다 보면 다른 세계에 놓인 듯하죠. 평범한 맥주도 위스키처럼 홀짝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만약 재즈를 좋아하신다면 분명 이 노래가 마음에 들 거예요. 혼자 있는 밤, 90년대 재즈바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 들어보세요. P.S - 다가오는 목요일에는 팟캐스트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팟캐스트에서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할 차별에 대한 이야기, 책 <차이, 차별, 처벌>을 소개할 예정이에요. - 뉴스레터 하단에 '후원하기' 링크를 추가했어요. 뉴스레터가 마음에 든다면, 혹은 커피 한 잔 사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이 링크를 통해 후원해주세요.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뉴스레터 유지에 정말 큰 도움이 돼요. - 이번주는 온화한 날씨가 지속되지만, 미세먼지가 농도가 높다고 해요. 몸 건강에 유의하세요. 그럼 안녕,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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