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친구. 이번 주에 쓰고 읽고 본 콘텐츠를 보내줄게
✉️ L E T T E R
어릴 적엔 손톱 깎는 일을 싫어했습니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어디 손톱 좀 보자. 아이고 귀신 나오겠네.' 하면서 내 손톱을 깎아주고는 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손톱을 바투 깎아 주었습니다. 어찌나 바짝 깎아 주시는지 손톱 끝이 속살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느낌을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때 일입니다. 저는 스스로 손톱을 깎을 것을 선언했습니다. 드디어 손톱 끝을 얇게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아버지는 그것이 퍽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그 뒤로도 몇 년은 '더 바투 깎아야지. 아빠가 깎아줄까?'하고 훈수를 두곤 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감히 헤아려 봅니다. 자식은 자꾸만 벗어나려고 애쓰고, 부모는 될 수 있는 한 곁에 두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자식이 더 자라게 되면 평생 깎아줄 일이 없겠으니, 내가 해줄 수 있을 때까지는 제대로 해줘야지. 언제나 챙겨줄 수는 없으므로 시간이 될 때 바짝 깎아주어야지. 그런 편부(偏父)의 마음이 자식의 손톱을 더 밭게, 더 바투 자르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올해 아버지는 환갑이고 나는 서른입니다. 환갑인 아버지는 서른이 된 아들의 손톱을 여전히 살피십니다. '손톱은 키우고 있는 거냐? 내가 깎아주랴?'라고 묻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라고 괜한 딴청을 피웠습니다. 부자간의 사랑이란 언제나 그렇게 어설프고 무던하게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사랑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잘 쓰인 '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당신과 나의 관계는 잘 쓰인 시와 같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방식으로 당신과 마음을 전하는 날이 우리의 생각보다 오래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2019년 6월 어느 날
아버지의 환갑을 축하드리며
무뚝뚝한 아들, 윤성용 드림 ✒️ B R U N C H
* 나는 남돌이 아닌, 나를 '덕질'하기로 했다. - Ellie
'소심한 완벽주의자가 아닌 무한 긍정 박애주의자로. 물론 '나' 한정.' 우리는 왜 자기 자신을 엄격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게는 그리도 너그러울까요. '00야, 너 하고 싶은대로 다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에게 말해주면 어떨까요.
* 우성씨, '후진 몸'이라는 말 다신 안했으면 좋겠어요. - 정우성
'선생님의 단호함이 내 작은 자의식을 마주하게 했다. 후진 건 내 몸이 아니었다.' 거울을 보고 온전한 내 몸을 마주할 때가 있죠. 멋지다고 말할 수 없는 몸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옵니다. 그런 콤플렉스에는 단호함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팟캐스트 '더파크'의 진행자, 우성님의 에세이입니다. 🎞️ Y O U T U B E
'꾸준히 하는 사람은 정말 힘이 세다고 생각해요.' 유료 뉴스레터 <일간 이슬아>를 운영하는 작가 이슬아. 그녀의 이메일을 아직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을 성실히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연재 노동자의 길을 선택한 '이슬아'님의 인터뷰입니다. 📫 F E E D B A C K '오늘 xyzorba는 어땠어요?'
🔗 L I N K - 지인에게 뉴스레터를 추천하고 싶다면? (구독링크) - 조르바 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팟캐스트)
|
일상 에세이, 글, 음악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