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마음을 뒤로하고
안녕, 친구. 이번 주에 쓰고 읽고 본 콘텐츠를 보내줄게
✉️ L E T T E R
내가 좀 나이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새 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었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더러운 옷차림과 누우런 얼굴로 나는 항상 골방 안에서 뒹굴었다. 내가 깨어 있을 때에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 긴 악몽들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었다. - 김승옥 <무진기행> 中
오늘은 조금 우울한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미안한 마음입니다. 나는 무진으로 떠납니다. 주말에는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음 날 비가 개는 대로 떠납니다. 무엇으로부터 떠나는지 묻는다면 그리 할 말은 많지 않습니다. 나조차도 무엇에서 떠나는 것 인지, 아니 내가 떠나려는 것이 맞는지도 희미한 상태입니다. 다만 머릿속에 처음 떠오르는 것은 '식었다'라는 단어입니다. '식었다'. 솔직히 그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로 하여금 미지근한 국물 요리의 온도라든지, 침묵하는 연인의 사이를 떠오르게 합니다. 분명 유쾌한 맛과 표정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 단어가 과거형이라는 점이 걸립니다. 식었다는 건 이전에는 따뜻하거나 뜨겁게 타올랐었다는 사실을 기저에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식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긴 시간과 강렬한 사건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멀리서 보면 아날로그적이고, 또 가까이서 볼 때면 디지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식는다는 건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모양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환경이든, 삶이나 실존 그 자체이든 간에 한번 식어버리면 다시 오르기가 힘듭니다. 새롭게 바꾸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촛불입니다. 어쩌면 그 불씨는 바람을 살살 불어주면 다시 타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훅'하고 날숨을 질러버린 것이 희미한 불씨마저 꺼뜨렸습니다. 회색 연기가 피어오를 때쯤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는 뜨거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가까운 친구는 내게 3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조언합니다. 해외여행이 정 부담스러우면 국내 어디든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생각에 내 마음은 이미 무겁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더 가라앉혀야 할 마음이 남아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나는 무진으로 잠깐 떠나기로 합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용기라든가 계획이 나오리라는 기대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그곳으로 떠나는 이유는 일상과 떨어진 도시에 나 자신을 두고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위로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 위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위로가 되리라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무진으로 갑니다. 참고로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무진은 가상의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무진은 어디인가. 그 대답에서 떠나는 길이 시작될 참입니다. 그러니 부디 그 사이에 잘 지내고 계십시오.
2019년 6월과 7월 사이
무진으로 가는 길에서 윤성용 드림 ✒️ R E A D I N G
* 관계를 망치고 있던 건 바로, 나였다 - 사월
'마음을 나누는 것이 조금씩 벅차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내게도 그런 날이 왔습니다. 마음을 나누기가 힘듭니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일에 소홀해졌습니다다. 어쩌면 그 모든 원인은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요. 관계의 허무함 속에서 고민하는 당신을 위한 글입니다.
* 에세이 작가의 아주 흔한 고민 - 아넷맘
'글이 때로는 날렵하고 첨예한 칼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에.' 제가 쓴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상처를 받은 이가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괴로움은 커집니다. 그것이 글 쓰는 사람의 숙명이자 늘 신중해야하는 이유입니다. 💿 M U S I C
'Hunny Bee, hunny Bee There's no such thing As sweeter a sting' '이 비디오를 벽에 걸어놓고 싶다.'라는 유튜브 댓글처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듯한 뮤직 비디오가 인상적입니다. 커다란 백팩을 매고 이어폰을 꽂은채 정처없이 떠나지만, 근심없이 여유로운 여행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 F E E D B A C K '오늘 xyzorba는 어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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