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이번주에 쓰고 읽고 본 콘텐츠를 보내줄게요.
안녕, 친구. 잘 지냈나요 오늘은 '빌리 엘리어트'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미처 철들지도 성장하지 못하고 어른이 된 두 사람, 성장영화를 보며 뒤늦게 울어봅니다. 맴맴 - 윤성용 : 진지하고 신중한 편입니다. 철이 없어 보일 정도로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딴짓을 좋아합니다. - 김의환 : 출판잡지 에디터. 뉴스레터 서비스 ‘오글리의 심야편지’ 휴업중. 잡다하게 보고 듣고 읽는 미디어 중독자입니다. 이제는 쓸 차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한 <빌리 엘리어트> 줄거리 요약
살면서 춤을 춰본 적이 있나요? 윤성용 : 혹시 인상깊은 장면이 있으셨나요? 사실 이 영화에는 명장면들이 너무 많아요. 전개가 빠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큰 장면 장면들이 모두 명장면들이거든요. 그래도 하나를 뽑아볼까요? 김의환 : 일단 춤추는 장면들은 모두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빌리가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서 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있어요. 자기의 표현수단으로서 춤을 완전히 체화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발레 동작이 아니라, 탭 댄스와 벽을 발로 차는 여러 몸동작이 섞여있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어서 더 좋았어요. 윤성용 : 왜 사춘기 시절이 힘들었는지 생각해보니까, 감정이나 화가 있는데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 마냥 반항한다거나, 방문을 닫고 벽을 친다던가. 저도 춤을 배웠다면 참 좋았을텐데요.(웃음) 김의환 : 혹시 살면서 춤 춰본 적 있으세요? 저는 거의 없어요. 몸을 움직여서 뭔가를 표현한 적도 없고, 춤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어요. 윤성용 : 저도 마찬가지예요. 생각해 보면 춤은 말보다도 더 솔직한 수단일텐데요. 김의환 : 그렇죠.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죠. 윤성용 : 언어가 없었을 때에는 아마 춤에 가까운 동작으로 소통했을텐데, 지금은 오히려 어색한 방식이 되었네요. 새롭게 보이는 것들 1. 남겨진 사람들 윤성용 : 저는 예전엔 ‘빌리’의 시점에서 영화를 봤다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춰서 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빌리’와 아버지. 이렇게 두 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과 자존심, 동료와 커뮤니티까지도 빌리를 위해 버릴 결심을 하잖아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더라구요. 김의환 : 저도 예전에는 꿈을 찾아가는 빌리에게 몰입했다면, 지금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마음이 갔어요. 이 사람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졌거든요. 마을의 상황은 악화되었고, 임금은 줄었고, 하지만 별다른 재주가 없으니 떠날 수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빌리를 발레 학교로 떠나 보내고, 바로 아버지와 형은 탄광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을 오랫동안 대비해서 보여주거든요. 윤성용 : 월킨슨 선생님은 젊었을 적에 꿈을 펼치지 못하고 끝난 상태였죠. 그런데 재능을 가진 빌리가 꿈을 찾아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거잖아요. 막상 빌리가 떠날 때는 기뻐하지도 않고, 차갑게 ‘행운을 빈다’고 말한채 돌아서는데요. 어두운 체육관에 홀로 서있는 선생님을 떠나는 빌리와 대조해서 보여준단 말이죠. 이 영화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계속 이야기하려고 했었구나.라는 게 이번에 보였어요. 김의환 : 빌리는 날아갈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과, 그 과정에서 조력하는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고 그것이 쉽게 잊혀지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이니까요. 아니, 그것도 잘된 케이스죠. 윤성용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조금 암울하게 느껴지네요. 김의환 : 어쩌면 그렇게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거죠. 빌리 한명만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이 되었을 수도 있고요. 윤성용 : 성장영화들이 잘 보여주지 않는 면이었던 것같아요. 그걸 조금이나마 상기시켜줬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특별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새롭게 보이는 것들 2. 1980년대 영국 김의환 : 이번에는 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배경’이 보이더라고요. 더럼 카운티라는 탄광촌과 1980년대 영국이라는 시대. 대처리즘이 한창 추진되면서 탄광이 문을 닫고, 강하던 영국 노조들이 힘을 못쓰고 무력감을 느끼던 배경 속에서 빌리의 이야기를 녹여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도 전형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몸도 두껍고 얼굴은 뻘겋고, 평소에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요. 윤성용 : 한번도 고향을 벗어나 본적이 없는... 김의환 : 런던에는 가본 적도 없고, 광부이고, 빌리도 별일이 없었다면 탄광으로 가야했던, 영국의 뿌리 깊은 노동자의 문화가 있었던 거죠. 마초적이고 성역할이 분명해서, 남자는 권투나 축구를 하고, 여자는 발레를 하는 것으로 나누어져 있는 세계예요. 그런 세계관을 심한 북부 사투리같이 말투나 억양으로도 보여주고 있어요. 그리고 집단주의적인 움직임들.그런 배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게 이 영화의 특수한 점이자.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문제의식이 아니었을까 해요. 윤성용 : 실제로 각본가가 어릴 적에 탄광촌에 살았고, 탄광촌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 이 영화에 배경들을 많이 녹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김의환 : 그래서인지 이 영화와 관련해 여러 다른 텍스트가 떠올랐어요. 먼저, 문화연구를 공부하면서 읽었던 <교양의 효용>,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학교와 계급 재생산> 등인데요. 영국 노동계급이 특유한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구축하고 전수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줘요. 거제도 조선 산업과 구성원들의 흥망성쇠를 다룬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도 그 사회 안에서 어떻게 특유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성역할이 구분되고, 행동 양식이 나타나는지,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그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보여주죠. 이곳에 사는 학생들을 담아낸 다큐 <땐뽀걸즈>, 빌리 엘리어트와 여러 모로 비슷한 가족 성장 영화 <미라클 벨리에>도 추천드리고 싶어요. 윤성용 : 생각해보면 저는 한번도 내 인생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때는 태어나자마자 이미 미래가 정해져 있던 시대였군요. 김의환 : 내가 원하는 대학, 전공, 원하는 직장과 직종. 이런 가능성을 갖고 살게된 사회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지금도 지역에 따라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아니, 선택이 필요한가 생각하기도 어려운 삶도 여전히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윤성용 : 빌리 엘리어트는 성공한 사례일 뿐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버지와 형을 따라 광부가 되었을 거라는 말이 이제야 와닿네요. 빌리에게 발레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김의환 : 학창 시절에 봤던 <빌리 엘리어트>는 ‘나도 빌리가 되어 훨훨 날아가야지’, ‘빌리에게 춤이 있다면 내게 춤은 뭘까?’를 생각하게 해주는, 되게 교훈적인 영화였어요. 나에게도 뭔가에 미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고,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고, 역경도 딛고 일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30대가 되어 다시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서는 그런 생각을 거의 안 했어요. 놀랍게도. 아직 제게도 꿈과 희망이 있고, 한창 성장할 때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에요. 윤성용 : 그때와 지금은 장애물의 성격이 조금 다른가 싶어요. 어렸을 때는 가족의 의견을 거스르기 힘들잖아요. 극복하기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지금도 꿈을 이루기 위한 장애물이 굉장히 많지만… 이게 극복이 가능한 건데 내가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극복이 힘든 건지 요즘 헷갈려요. 김의환 : 환경적인, 조건상의 제약에 대해 생각하세요? 윤성용 :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환경 때문에 못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때 하지 못했던 것은 환경 때문이야. 예를 들어 나는 미술이 하고 싶었는데 집에서 지원할 돈이 없어서 못 했어, 이렇게요. 지금은 내가 꿈꾸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는데, 내가 안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어요. 김의환 : 저도, 놀랍게도 똑같아요. 내 자신이 게으르거나, 주저하거나, 성실하지 못하거나, 하면 되는데 왜 못 할까, 하다보면 될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윤성용 : 문득 떠오른 건데, 목표나 궁극적으로 도달하고픈 꿈이 있으신가요? (웃음) 김의환 : 꿈이요? 빌리에게 춤이 있다면, 제게는 소설 쓰는 거예요. 소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고 뭔가 남기고 싶고 나로서 살고 싶고 그래요. 쓰고 있진 않고 남들 얘기만 열심히 흡수하고, 남의 글 고치고 있지만요. 윤성용 : 요즘 누군가에게 꿈을 물어보면, “왜 그게 꿈이세요?”라고, 왜 하필이면 그거냐고 물어보게 되더라고요.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발레학교 면접관들이 빌리에게 왜 발레를 좋아하게 됐냐고 물어보잖아요. 빌리는 왜 발레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아요. 하지만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를 얘기해요. 빌리한테는 그것만으로도 사실은 충분한 거예요. 요새 저는 스스로 ‘왜 하필이면 나는 이걸 하려고 하지?’라는, ‘왜'라는 것 때문에 스스로 지체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의환 : 맞아요. 그 ‘왜'가 없는 게 오히려 더 나은 것 같기도 해요. 별 이유가 없어도 되는데. 만약 빌리가 입시에서 떨어졌다면? 윤성용 : 이 영화에는 반전의 요소가 없어요. 아주 전형적인 성장 영화예요. 김의환 : 반전을 기대하는 영화는 아니니까요. 빌리가 다리 부러져서 발레 못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진짜 졸작 되지. 모든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니까요. 윤성용 : 만약 빌리가 발레학교 입시에서 떨어졌다면 어땠을까요? 김의환 : 와, 너무 좋은 질문이네요. 합격 결과 나오기 전, 그 집안 분위기를 우리가 봤잖아요. 모든 식구가 긴장한 채 빌리만 바라보는 거. 올인이고 두 번의 기회가 없는 상황인데,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요? 그런 친구에게 누가 가서,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할 수 없잖아요. 여기는 완전히 원코인 인생인데. 윤성용 : 한편으로는 꿈의 달성 여부가 '발레학교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로 결정된다는 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까 조금 이질감이 있네요. 김의환 : 그러게요. 엘리트, 상류층인 심사위원들의 승인을 얻는 거잖아요. 윤성용 :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 꿈이란 게 그런 걸까요? 다른 사람이 평가해주는 게 아닐텐데. 김의환 : 그런데 뭐, 저도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게 고등학생 때 꿈이었고, 거기 못 가서 좌절했었거든요. 이 질문이 되게 슬프게 다가오네요. 윤성용 : 대부분 예전에 개천에서 용났다고 하는 건 모두 이런 식으로 이뤄졌잖아요. 시험을 통과하는 것. 저는 오디션 프로그램 보면서도 항상 그런 걸 느껴요. 참가자들은 합격해야만 춤이든 노래든 계속 할 수 있다는 것. 갑자기 씁쓸해지네요(웃음).<빌리 엘리어트> 총평 윤성용 : 이 영화에 별점을 준다면? 5점 만점에. 김의환 : 4점. 윤성용 : 저도 4점. 김의환 : 뭐가 아쉬워서는 아니에요. 완벽하게 매료되는 영화가 있고 아닌 영화가 있잖아요. 4점 정도면 나무랄 데 없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윤성용 : 저도 비슷한 의견이에요. 뭘 넣거나 빼고 싶은 게 있는 건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래서 아쉬웠달까요. 너무... 김의환 : 영화의 모든 구성이 되게 매끄럽죠. 갈등조차도, 이렇게 가야만 하는 길로 잘 갔어요.윤성용 : 한줄로 평해보죠. 저는 음... '꿈을 간직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김의환 : '남겨진 사람들의 뒷얘기가 궁금하다.' 그 탄광촌은 어떻게 됐을까? 잘 살고 계실까? 할머니는 잘 계실까? 발레 선생님은 남편과 잘 지내실까? 그런, 특출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궁금하네요. 윤성용 : 꿈을 좇아 떠난 빌리와, 남겨진 사람들. 재밌네요. 📽️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F E E D B A C K 당신의 생각이 궁금해요 "오늘 xyzorba flim은 어땠어요?" 오늘 목요일 레터는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의견을 통해 더 나아지도록 노력할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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