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현관문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적이 있다. 지난 일 년간 자연스럽게 눌러왔던 번호가 떠오르지 않아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어왔던 것이다. 어쩌면 내 삶의 대부분이 이런 무의식 속에서 의미 없이 관성적으로 채워졌던 것은 아닌지 문득 두려워졌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조금씩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땐 밥만 먹고,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만 듣고, 커피를 마실 때는 커피만 마시는 것이다.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해보면 이외로 쉽지 않다. 주머니 속에 있는 스마트폰이 자꾸만 신경 쓰이고, 찰나의 지루함을 좀처럼 견디기가 힘들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해낼 수 있는 환경에서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여러모로 불편하고 초조한 경험이다.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때는 음식의 맛과 향, 온도와 식감에 집중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실 때는 먼저 향을 맡아본 뒤 한 모금씩 천천히 음미해본다. 그러면 그동안 놓쳤던 향미와 질감, 은은한 산미와 캐러멜 단맛을 발견하게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자주 듣던 음악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보면 전에는 미처 몰랐던 세션이나 코러스 소리가 미세하게 드러난다. 또 어떤 음악은 멜로디에 숨어있던 가사가 의미의 차원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산책을 할 때, 버스를 탈 때, 대화를 할 때, 심지어 설거지를 하거나 이불 정리를 할 때도, 그 순간을 고스란히 감각하려고 노력하면 어떤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작지만 분명한 기쁨이 된다. 나는 내 안에 작은 기쁨을 쌓아가는 과정이 좋은 삶이라고 믿고 있다.
그동안 나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왔던 건 아닐까.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내는 것도 이토록 어려운데 말이다. 이제 나는 그저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간절히 원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건 그런 연습이 될 거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