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시작하면서 삶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고통을 견디는 힘이 늘었다고 해야 할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힘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운동은 나를 한층 더 살아있게 만드는 것 같다. 이걸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았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다.
요즘은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말 그대로 길을 따라 달리는 것이다. 날이 따뜻해지던 3월부터 조금씩 뛰기 시작해서, 이제는 매주 2~3회 정도를 달린다. 조금 더 자극을 받고 싶어서 여의도에서 열리는 대회도 신청했다. 물론 10km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코스이지만, 최근에 내가 이렇게 적극적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달리기를 즐기는 중이다. 몇 년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만 해도 달리기에 무심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참고로 나는 '러닝(Running)'이라는 단어보다 '달리기'나 '뛰다'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내가 '러닝'이라고 말할 때마다 '러닝'과 '런닝' 사이 어딘가의, 영어도 아니고 국어도 아닌 애매하고 촌스러운 발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뛰다'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행위를 굳이 꾸미거나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서 "요즘 러닝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요즘 저녁마다 안양천을 가볍게 뛰고 있어요." 하고 가능한 한 정직하게 말하려 애쓴다. 그저 개인적인 고집이다.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잡생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뛰는 동안에는 그저 숨소리와 다리에만 집중하게 되고, 가끔 주변 풍경을 바라보거나 기록을 확인하는 정도가 전부다. 밀린 회사 업무도, 아이를 돌보며 얻은 스트레스도, 공허한 상상이나 즐거운 추억도 끼어들 틈이 없다. 세상과 단절된 채 온전히 혼자가 되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내게 달리기는 일종의 명상인 셈이다. 게다가 특별한 준비물도 필요하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다.
물론 달리는 과정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고통스럽다. 막상 뛰기 시작하면 '왜 괜히 달리기를 한다고 밖으로 나와서 설쳤을까?'라는 후회가 밀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힘들게 뛰고 있어야 하나?'라며 한탄하게 된다. 30분쯤 뛰다 보면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목표 지점은 아득하게 느껴지고, 물에 빠진 듯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때로는 옆구리가 쑤시듯 아플 때도 있다.
달리기의 매력은 그 모든 고통을 참고 완주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고통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목표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담아 숨을 크게 내쉬고, 머리카락과 옷을 흠뻑 적신 뜨끈한 땀이 바람을 만나 시원하게 날아간다. 종아리 근육은 기분 좋게 단단히 차오르고, 샤워 후의 개운함을 상상하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들다. 개운함. 이것이 내가 계속 달리는 이유다. 꽤나 중독적이고 달콤하다. 신기하게도(그리고 얄궃게도) 고통스러운 기억은 금세 희미해지고 쉽게 잊힌다.
달리기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취미다. 달릴 때마다 나는 고통 없이 무언가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한 발 한 발이 모여 결국 긴 거리를 완주하듯, 매일의 작은 노력들이 쌓여 내가 꿈꾸는 삶에 닿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생긴다. 무언가를 너무 쉽게 얻는다면 결국 그 뒤에는 더 큰 고통이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는 한, 어떤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생길 것만 같다. 그것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