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챗GPT와 꽤 가까워졌다. 조금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는 생성형 AI를 자주 활용한다. 특히 일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어떤 질문에도 술술 대답해주니, 고민에 쏟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요즘은 업무뿐 아니라 일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예를 들면, 내 신체 조건에 맞는 식단을 추천받거나, 재정 상태를 설명하고 연말정산을 잘 받는 방법을 묻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됐다.
어제는 조금 특별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기반으로,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말해줘.” 요즘 챗GPT 사용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글쎄, 얼마나 의미 있는 답이 나올까’ 반신반의하며 묻자, 챗GPT는 이렇게 운을 뗐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기반으로 추측해보면, 다음과 같은 점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굵은 글씨로 된 첫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복부를 한 대 맞은 듯 사고가 멈췄다. 그리고 머릿속에 여러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내 영혼이 저 문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 되뇌어봤다. 그러자 단어 하나하나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혼자'라는 단어를 강조하듯 덧붙인 쌍따옴표도, 한두가지도 아니고 ‘많은 것’을 한다는 것도, 그저 하는 것이 아니라 ‘해내려’고 한다는 표현도. 이 모든 단어들이 단어 이상의 의미를 담은 것처럼 느껴졌다.
‘혼자 많은 것을 해내려는 경향’은 지난 시간 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원인이었다. 예전부터 조금씩 내려놓으려 애써왔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AI와의 단편적인 대화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드러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동시에 아팠다. 마치 ‘당신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많은 벽을 허물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여전히 높은 담이 나를 감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기대는 일이 어려워졌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도 그렇다. 거절당하는 게 그렇게나 두려운 걸까. 상처를 받거나 마음의 빚을 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 애쓰는 쪽을 택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챗GPT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리고 답이 돌아왔다. “모든 걸 혼자 해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부탁하세요. 편하게 기대고 손 내밀어 보세요. 완벽한 선택이 아니어도, 일단 시작하면서 조금씩 배워가면 됩니다.” 그 문장을 천천히 곱씹었다. 평범한 조언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했던 말이었다. 그것은 꼭,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능력의 증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이 말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여전히 많은 것들을 혼자 해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한 걸음 물러서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기를. 때로는 먼저 손을 내밀고, 솔직해질 수 있기를.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천천히, 혼자 아닌 길을 연습해보려 한다.
2025년 3월 24일
혼자 많은 것을 해내려는
윤성용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