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친구 에게... | 어제는 시장을 찾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한 겨울이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따듯한 입김이 새어 나왔다. 좁은 길가에는 과일이나 채소, 생선 같은 것을 종류 별로 펼쳐 놓고, 저마다 큰 목소리로 손님들을 불러 모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옹기종기 가판에 앉아 감자전에 소주를 들고 있었다. 시장의 활기 찬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들떴다.
한편에는 동지를 맞이하여 큰 가마솥 서너 개에 팥죽과 호박죽을 가득 쑤고 있었다. 바닥이 누르지 않도록 나무 주걱으로 저어주는 모습이 분주하다. 가마솥에는 굵은 팥알과 찹쌀이 붉게 찼고, 그 사이로 흰 새알심이 둥둥 떠있다. 팥죽이 끓기를 기다리는 손님이 줄을 섰다. 나는 동짓날에 사람들이 정말로 팥죽을 먹는다는 걸 몰랐다. 어쩜 이런 풍습이 사라지지 않고 이토록 오래 이어질 수 있는 걸까, 하고 놀랐다.
정육점 앞에도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보았더니 소고기 할인 행사를 한단다. 점원은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즉석에서 솜씨 좋게 손질하고, 무게를 재어 손님에게 차례대로 건네주고 있었다. 앞줄에 선 아주머니들은 기다렸다는 듯 고기를 네 근, 다섯 근씩 사갔다. 낮부터 약주를 하신 아저씨는 점원의 칼솜씨가 굼뜨다며 나무랐다. 나도 줄을 서서 등심과 치마살을 한 근씩 샀다. 묵직한 봉투를 양손에 들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즐거웠다.
요즘은 대형 마트나 인터넷으로 장을 본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재래시장에 가는 걸 좋아한다. 시장에는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어린 상추가 있고, 인터넷에서는 검색할 일이 없는 궁채나물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친절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숨을 쉬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관심을 끌고 인사하고 몰두하고 체념하고 수다를 떨고 참견하고 거친 손길을 흔드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인생과 꼭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시장에 가면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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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7일
시장에서
윤성용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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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시들, “이상하다, 꽃그늘 아래 이렇게 살아 있는 것”,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극락세계에 가지 않은 축복, 올해의 술”까지 읽은 뒤, 다시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에 달린 각주에 줄을 긋는다. “잇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하이쿠는 일본 동북 지방 대지진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처참한 파괴 현장 사진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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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설가 김연수의 칼럼을 소개해드립니다. 일본에는 '하이쿠'라는 전통적인 정형시가 있습니다. 17자에 담아내는 단편 시인데 짧은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일본 시인 고바야시 잇사는 두 아이를 잃고 이런 하이쿠를 남깁니다.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 이 짧은 문장 속에서도 삶의 가혹함과 그의 좌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지옥의 같은 삶에서도 아름다움의 끈을 놓지 않으며 쓴 시가 마음을 울립니다. 우리는 왜 가장 불행한 순간에 글을 쓰게 될까요. 문학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칼럼을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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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야옹아 밥은 먹었니 다친 덴 없니 잠은 잘 잤니
이 추운 겨울날 집을 나갔니 오 나의 야옹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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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하헌진의 '오 나의 야옹아'를 추천해 드립니다. 하헌진은 블루스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블루스는 같은 가사를 반복하고 구성이 단순하며 자신의 경험을 노래한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그런 독특성을 잘 보여주면서도 한국의 정서가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어느 겨울날 홀연히 집을 나가버린, 그리고 사흘째 다시 돌아온 '야옹이'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인데요. 이야기를 들려주듯 담담한 나레이션과 단출하지만 애틋한 가사가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어느 춥고 조용한 겨울날, 손난로 대신 듣기 좋은 노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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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올해의 마지막 주를 지나고 있습니다. 다들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내셨나요. 강한 한파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날은 춥고 건조하다고 합니다. 부디 따뜻했던 기억 한 줌만 품고 이번 해를 가만한 마음으로 보내주기를 바랍니다. 그럼 안녕,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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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장과 피드백은 늘 꼼꼼히 읽고 있어요. 좋은 말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지적은 기꺼이 반영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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