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아버지와 목욕탕에 자주 갔다. 아버지는 나를 씻기고 난 다음에야 본인의 몸을 씻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항상 면도였다. 일회용 면도기로 쓰윽쓱-사악삭 소리를 내며 능숙하게 수염을 깎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나는 언제쯤 면도를 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곧 있으면 평생 동안 하게 될 거라고 답했다. 면도를 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의미였다. 당시 내게는 그랬다.
언젠가부터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넘어가는 시기 즈음이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미숙했다. 비누로 대충 거품을 내어 묻히고, 면도기 광고에 나오는 스포츠 스타처럼 스으윽-하고 밀어봤다. 여기저기에 따끔한 상처가 났다. 그때는 괜히 도구를 탓했는데 사실은 실력이 문제였다. 그렇게 몇 번은 더 상처가 난 뒤에야 올바른 면도법을 익힐 수 있었다.
면도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따뜻한 물로 세안을 한다. 빳빳한 수염을 물에 불려 부드럽게 만들어야만 깔끔하게 면도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는 쉐이빙 젤을 인중과 턱, 볼까지 꼼꼼히 발라준다. 이때 비누 거품은 안된다. 비누는 피부의 유분을 없애기 때문에 면도할 때 빳빳해지고 상처가 잘 난다. 면도기를 사용할 때는 먼저 수염이 난 방향대로 민다. 그리고 더 깔끔한 면도를 위해 역방향으로 마무리한다. 혹시나 놓친 부분은 없는지 손가락으로 쓰다듬어보거나 거울로 꼼꼼히 살핀 뒤에 찬물로 거품을 씻어낸다. 마지막으로 애프터 쉐이브를 발라 피부 자극을 진정시켜 준다.
벌써 20년 가까이를 매일 아침 해왔지만, 면도는 여전히 내가 잘 해내고 싶은 일이다. 아마도 성인 남성에게 있어서 가장 간단하게 비포와 애프터가 달라지는 활동이 바로 면도일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나를 더 나은 상태로 만든다는 것, 그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눈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단 몇 번의 움직임으로 가능하다는 것, 거기에다가 위험하고도 멋진 장비까지. 누군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면도하는 일이 고역이라고 말하지만, 면도는 꽤나 즐겁고 매력적이다.
그러고 보면 면도는 더하는 일이 아니라 빼는 일이다. 그러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그저 내가 되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지난밤 사이에 자라난, 나도 모르게 내가 지니고 있던 지저분한 것을 깎아 없애고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는 건 어쩐지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어른의 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