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늦은 밤이었다. 모든 일을 끝내고 버스에 올라탔다. 유리창이 나를 연하게 비추었다. 초라했다. 안경은 비뚤게 걸쳐있고 눈은 퀭한 게 생기가 없었다.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제멋대로 뻗어있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아, 이런 녀석을 이끌고 내일을 또 살아내야 한다니.' 나는 그만 자신이 없어졌다.
2.
지난주에는 많은 분들이 뉴스레터 3주년을 축하해주었다. 그저 글을 써 메일로 보냈고 그게 어쩌다 보니 3년이 되었는데, 그에 비해 과분한 응원을 받은 것 같아서 참 멋쩍고 감사했다. 거의 3년 동안 구독한 분에게 메일을 받았을 땐 너무 감격스러워서 울컥했다. 어쩌면 이토록 오랫동안 잊지 않고 읽어주셨을까 싶다. 대학생 때 처음 구독했는데 이제는 직장인이 되었다는 분도 있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싶다. 5년 전에만 해도 세상에는 꼭 나 혼자인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지금껏 어떻게 그리 단단한 마음으로 뉴스레터를 보내왔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너무나 불안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나는 이참에 구독자들과 오해를 좀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매일 흔들린다. 그것도 엄청나게 흔들거린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짜기도 하고, 그냥 다 포기하겠다며 침대에 드러눕기도 한다.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후회도 한다. 주말마다 뉴스레터를 그만두고 싶다며 아내에게 징징거린다. 나는 글에는 영 소질이 없고, 실은 애초에 글을 쓰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진지하게 말하기도 한다. 아내도 처음엔 신중하게 잘 들어줬는데 한 2, 3년쯤 되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러니 '단단한 마음'은 큰 오해다. 나는 매일 흔들린다. 그래도 흔들리면서 나아간다. 흔들리지 않기보다는, 흔들리면서 나아가는 방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사실 방법이랄 것도 없다. 그저 익숙해졌을 뿐이다. 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결국 이런 묘한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허리 곧게 펴고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꾸역꾸역 해내고 있어.'라고.
3.
그리고 아침이 왔다. 내게 아침은 초기화의 시간이다. 깊은 밤 동안 나를 괴롭혔던 생각과 과거에 대한 후회도, 내일에 대한 불안도, 술을 마시며 나누던 씁쓸한 대화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아침이 되면 햇볕에 색이 바랜 것처럼 흐릿한 흔적으로 사라져 있었다. 아침은 언제나 내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세상은 계속 돌아간다."는 사실을 부드럽고 사려 깊게 일깨워주었다. 만약 아침이 없었더라면 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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